촉촉한 땅에서 '쑥' 손맛 즐거운 '당근'
촉촉한 땅에서 '쑥' 손맛 즐거운 '당근'
  • 경남일보
  • 승인 2014.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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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농사꾼의 귀농일지>
비가 많이 내린 한 주였다. 태풍 너구리가 올라오면서 비구름을 밀고와 우리지역에 비를 뿌렸다. 다행히 태풍은 일본열도로 방향을 틀면서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피해를 남기지 않았다.

비가 내리면 풀 베는 일 말고는 바깥일을 할 수 없다. 부지런을 떤다고 논밭을 밟고 다니면 젖은 땅이 딱딱해져 농작물에 피해를 주게 된다. 아무리 바빠도 밭일은 빗물이 어느 정도 빠지고 난 후에 하는 것이 맞다.

땅이 굳어 잘 뽑히지 않아 미뤄 두었던 당근을 수확했다. 당근은 지난 3월 말에 씨앗을 사다 심었다. 지난해에는 6월말에 수확을 했었는데 올해는 20여일 늦었다. 그동안 필요하면 한 두 뿌리 뽑아 찬거리로 이용해왔지만 땅이 굳어 줄기를 잡고 당기면 잘 뽑히지 않아 애를 먹었다. 수확은 비가 내린 후 흙이 젖었을 때 하기로 미루어 왔다. 주초에 내린 비가 그친 후 드디어 당근을 뽑기로 했다. 땅에 적당한 습기가 남아 흙이 굳지 않아 쉽게 수확 할 수 있었다. 잎과 줄기를 잡고 당기면 쑥쑥 올라왔다. 당근이 올라 올 때마다 달콤한 당근 향이 묻어 나왔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수확한 당근을 가져오자 모두들 당근 농사를 잘 지었다며 부러워했다. 그동안 이웃에 당근을 심는 농가는 없었다. 당근을 많이 사용하는 아내는 있는 땅이니 심어보자고 해서 지난해부터 씨앗을 사서 뿌렸다. 실낱같은 당근이 발아하고 시간이 지나면 크기가 고르지는 않았지만 필요한 양만큼은 수확할 수 있었다. 오늘도 수확한 못생긴 당근을 이사람저사람 맛이나 보라고 나눠주며 웃었다.

수확한 당근은 그늘에 말렸다가 흙을 털어낸 후 마르지 않도록 적당한 양으로 나누어 신문지에 싸서 보관을 한다. 오래 보관을 해야 할 당근은 냉장고에 넣어두면 가을에 수확할 때까지 두고두고 먹을 수 있다.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한풀 꺾이는 초가을이면 다시 당근을 심을 것이다.

그동안 미루어 왔던 늦게 생긴 가지 끝에 달린 감을 솎았다. 급한 마음에 비가 그친 후 잎에 묻은 물기가 채 마르기 전에 일을 시작했다가 그만 두어야 했다. 감나무 가지를 만지면 잎에 남은 물기가 옷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눈으로까지 쏟아져 작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맑은 날을 기다렸다가 햇볕이 쏟아지는 날 할 수 밖에 없었다.

감을 솎고 난 후 다시 달리는 흔히 끝감이라 부르는 감을 따내는 것은 수확을 해도 상품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크기도 작을 뿐 아니라 모양도 못생긴 기형이 많고 영양분만 소비한다. 열매가 열리는 시기도 감 솎는 작업을 끝낸 후 달리고 꼭지가 딱딱해진 이후라 가위로 일일이 때내야 하는 귀찮은 일이다.

잡초와의 전쟁은 풀이 자라는 여름 내내 해야 하는 일이다. 틈나는 대로 베고 베어도 벨 곳이 또 남아있다. 풀을 베다 고라니새끼를 한 마리를 잡았다. 제집마냥 과수원 풀밭에 숨어 있었다. 아직 다리가 짧고 어린놈이라 풀을 헤치고 도망을 가지 못하고 허둥대다 붙잡힌 것이다.

붙잡은 고라니새끼를 처분하는 것도 문제였다. 그냥두면 어미로 자라 논밭을 뛰어다니며 피해를 줄 것이 뻔하고 이제 갓 태어난 새끼를 죽일 수도 없었다. 동내 사람들은 노루나 고라니를 죽이면 재수가 없다고 살려주라고 한다. 새끼 울음소리에 어미가 주위를 맴돌며 떠나지를 않았다. 잡은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라니새끼를 풀어 주기로 했다. 풀어주면 미운 짓을 할 것은 확실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혹시 혼이 나면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아 쉽게 오를 수 없는 수로에다 풀어 주기로 했다. 탈출하여 도망치더라도 혼이 나서 다시 밭으로 내려오지 않기를 바랐다.

비가 자주 내리자 수박과 참외 덩굴이 말라 죽었다. 수박을 심는다고 하자 노지에서는 안 된다고 하는 말이 생각났다. 지난해에도 잘 자라다가 어느 날 갑자가 줄기가 말라 죽는 것을 보았다. 달린 수박만 덩그러니 남아 말라죽은 덩굴에 매달려 있었다. 아까운 마음에 한 통을 따와 잘라 맛을 보니 맹탕이었다. 올해 수박과 참외 농사는 장마와 함께 포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수박 농사를 짓는 분에게 물어보니 수박 구덩이에 물이 고이면 죽는다고 한다. 심기만 하면 따먹을 수 있는 쉬운 수박농사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당근수확
당근수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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