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강진 (동서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작년 모 신문사와 입시전문 업체가 고교생을 대상으로 공동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약 70%가 한국전쟁을 ‘북침’이라고 응답했다고 발표했다. 정부나 주요 언론에서 청소년들의 역사인식 부재를 개탄했다. 하지만 조사방법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리 우려할 만한 사안은 아니었다. 바로 한자 어휘에 애매모호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6·25 한국전쟁은 북침인가요, 아니면 남침인가요?” 표현 대신에 “북한이 남한을 침략한 전쟁인가요, 아니면 남한이 북한을 침략한 전쟁인가요?”라고 질문했더라면 응답 결과는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다. 전자 형식의 문항에서 선택한 ‘북침’은 북한의 남쪽 침입이라는 뜻으로 읽혔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북침과 남침을 구분하지 못하는 청소년들로 규정한 것은 일부 어른들의 성급한 일반화다. 허술한 국사교육 체계에서 빚어진 후속세대의 무지보다는 오히려 기성집단의 특정한 선입견이 개입된 결과분석으로 이해하는 편이 온당하다.
40년 전 초등학교 조례시간 때의 일이다. 교실에 들어선 담임선생님이 느닷없이 국기 게양을 맡은 주번을 불러내더니 손바닥으로 사정없이 친구의 얼굴을 몇 차례 후려쳤다. 붉으락푸르락하던 선생님의 분노가 겨우 가라앉고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빨강 문양을 아래로 향하게 매단 것은 엄청난 국가모독이며 주번의 몰지각한 행위는 응당한 처벌대상임을 주지시켰다. 적색과 청색이 남북한 영토의 상징 개념으로 명료하게 각인된 날이었다. 지금도 얼핏 떠오르는 자기 검열 의식은 당시의 획일적 국가시스템이 낳은 부정적 산물이었으니, 필자가 다닌 시골의 한 학교에만 한정되지는 않았으리라.
공감 요소가 결여된 이러한 불통 사례는 교육 외의 분야에서도 유형을 달리해 현재에도 재연되고 있다. 타자를 무시하는 억압적 소통은 기득권 유지와 밀접한 성격을 갖고 있다. 분열을 조장하거나 통합을 지연시키는 낡은 소통구조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성숙한 시민공동체는 합리적 정보를 자유롭게 공유하는 것을 소통의 핵심으로 삼는다. 따라서 주도세력이 추구하는 행위나 가치판단은 사회적 정의에 견주어 전체 맥락이 적합한지를 세밀히 따져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보편타당한 공감대에 철저히 기반을 둔 각계 지도자의 약속과 실천이야말로 국민이 진정 바라는 소통의 방향이다.
하강진 (동서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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