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65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65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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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3. 일어서는 빛
10월로 접어들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마침내 결전의 시간이 닥쳐왔다.

왜군은 진주성 동쪽 10여 리 근방 임연대(臨淵臺) 등지로 나아오며 진주성에 서서히 접근했다. 선봉에 선 왜군 기병 1천여 명이 성 동편 말티고개의 북쪽 봉우리에 나타나, 무수한 칼날을 번쩍거리며 말을 마구 내닫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신경 쓸 것 없다. 우리에게 겁을 주어 교란케 하려는 교활한 흉계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수성군은 술렁거렸다. 적은 이쪽을 독 안에 든 쥐라고 얕잡아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들 속임수에 넘어가서는 아니 될 것이야.”

가증스럽다는 얼굴로 시민은 불안해하는 부하들을 꼭꼭 단속시켰다.

“적을 보아도 못 본 체 하라.”

성벽 위에 설치한 낮은 담인 성가퀴에 몸을 숨기고 적을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는 군사들에게 명했다.

“탄알 한 개, 화살 한 대라도 허비하지 말라.”

시민은 기병 500여 명을 모았다. 그러고는 적의 눈에 보이는 곳에서 힘차게 돌진케 했다. 그 기세는 가히 적을 위압할 만했다. 왜병들이 장수들 모르게 쑥덕거렸다.

“조선군 기동력이 보통이 아닌 것 같아.”

“말 타는 솜씨도 우리를 능가하지 않을까?”

시민의 임전태세는 기발하고도 치밀했다. 성 안 잘 보이는 곳에 용대기(龍大旗)를 세웠다. 큰 깃발에 그려진 용은 바람이 불 적마다 살아서 용틀임치는 듯했다. 곳곳에 휘장과 장막도 많이 쳐놓았다. 성내 노약자와 여자들에게도 남자 옷을 입혀 군사가 많은 것처럼 위장했다.

신시(申時, 오후 3시∼5시)에 왜군 무리가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적이 물러갔다고 모두가 안도하며 좋아했다. 날카로운 눈을 빛내며 시민이 말했다.

“위장전술을 펴고 있다. 가소로운 놈들 같으니라고!”

시민은 몸이 날쌔고 건장한 병사 몇을 뽑아 산 위에 올라가 왜군 동태를 살펴보라고 지시했다. 아니나 다를까, 적은 퇴각한 게 아니었다.

“장군! 수만 명이나 되는 왜적 무리가 임연대 근처에서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 기세가 보통이 아닙니다.”

긴급히 보고하는 덩치 큰 군사의 안색이 무청처럼 매우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하지만 시민은 늠름한 자세를 조금도 흩뜨리지 않고 침착하게 군사들을 지휘했다.

“불안해 하지 마라. 당황해서도 아니 된다.”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밖을 둘러 파서 만든 해자(垓字) 쪽으로부터 불어온 바람이 수성군 군복 자락을 흔들리게 했다. 진주성처럼 평지에 위치한 성곽에 많은 게 해자였다. 공성군인 왜군들 진지에는 더 세찬 바람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곳 지형을 손금 들여다보듯 훤히 꿰고 있다.”

그렇게 말하면서 시민이 들여다보는 그의 손바닥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무기를 잡아온 탓에 굳은살이 두껍고 단단하게 박혀 있었다.

“하지만 적에게는 낯선 곳이니 우리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러자 기세가 꺾이려던 조선군은 저마다 칼이며 활, 창과 방패를 잡은 손을 높이 치켜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 함성은 성 밖에 진을 치고 있는 왜군은 물론, 조운과 정평구가 비차를 만들고 있는 가마못 뒤쪽 분지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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