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량세태(炎凉世態)
염량세태(炎凉世態)
  • 경남일보
  • 승인 2014.07.1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숙 (지경서당장)
‘옥에 흙이 묻어 길가에 버렸으니/오는 이 가는 이 흙이라 하는 고야/두어라, 알 이 있을지니 흙인 듯이 있거라.’

초야에 묻힌 사람을 흙이 묻어 길에 버려진 옥에 비유한 윤두서의 이 시조는, 누명을 쓰고 억울한 입장에 처하게 되어도 옥은 언제나 옥이니 흙이라는 세인들의 평판에 너무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고 굳이 옥이라고 나서지도 말고 조용히 그냥 지내라. 그러다 언젠가 때가 되면 누군가가 그 진가를 알아 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유임 결정 1주일 만에 사퇴를 발표하는 홍명보 감독을 보고 있노라니 이 시조가 생각났다. 특히 땅 매입 문제가 인터넷에 뜨자 10대들이 더 나서서 그의 인격까지 싸잡아서 매도하는 그 대목에서. 2002년 여름, 숨죽이며 그의 발끝만 바라봐야 했던 환희의 그 순간도, 이후 런던올림픽 동메달의 그 기적도 저 브라주카의 독배(毒杯)를 피해 갈 수가 없었던 것일까.

“인생을 그렇게 (연습시간 중에 나가서 땅이나 살 정도로 함부로) 살지 않았다. 지미 카터의 삶을 동경한다”는 그의 고별사를 두고도 또 취모구자(吹毛求疵) 중이다. 우리는 왜 어떤 상황이든 이렇게 결과론을 앞세우며 늘 이런 식으로 대응을 하려 드는 것일까. 비록 그 성적은 저조해도 그가 공금을 횡령해서 그 땅을 산 것도 아니고 계약시간에 그 현장에 있었던 것도 아니지 않는가.

아무리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염량세태(炎凉世態)라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홍 감독이 아닌 인간 홍명보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홍명보 자존심까지 짓이겨서는 안 된다. 철없는 아이들이 그런다고 어른들까지 덩달아서 그 장단에 놀아난다면 어른 체통이 말이 아니다. 이때는 기성세대가 냉철한 교통정리를 해야 신세대들이 제대로 된 문화를 만들어 갈 수가 있다.

대부분의 10대들이 몇몇 아이돌과 잘 나가는 운동선수들로 가슴을 채우다 보니 우리 역사를 넘어 세계사에 족적을 남긴 저명한 인물일지라도 섹시한 저들과는 비교가 안 된다. 엄마·아빠 결혼기념일과 생일은 잊고 넘어가도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에게는 팬클럽에 가입해서 꼬박꼬박 회비 내고 생일선물도 챙겨준다. 그러다 악성 스캔들이라도 터지면 말벌떼 마냥 달려들어 마녀사냥을 해댄다.

이처럼 어느 한순간의 결과물로 극과 극의 평가를 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이는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그 이면에 돋보기를 대고 보면 9회말 투 아웃 상황에서도 만루홈런이 터진 경우가 가끔 있다. 마치 이게 인생이다. 언덕은 내려다봐도 사람은 내려다보지 말라고 경고해 주는 것처럼.

이상숙 (지경서당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