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67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67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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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1. 오고 있다
유숭인은 금방이라도 왜군이 달려올 것같이 연신 뒤를 돌아보며 숨넘어가는 소리로,

“이, 이보게. 제, 제발 나 좀 살려줘, 응?”

하지만 시민은 두 눈을 내리깐 채 냉정하게 말했다.

“그러니 병사께서는 성 밖에서 지원해 주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장졸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유숭인의 머리 위에는 점점 더 많은 까마귀 떼가 모여들고 있었다.

“아, 이 사람아! 아무리 그, 그래도……?”

이제 유숭인은 숫제 울음 섞인 음성이었다. 시민도 울부짖는 목소리였다.

“그렇게 해주십시오.”

급기야 수성군들 중에는 고개를 돌려버리거나 눈을 감아버리는 자들도 나왔다. 시민의 그 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더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아아…….”

시민의 태도가 너무나 단호하여 유숭인은 부득이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성 밖에는 정득열과 주대청도 와 있었다. 두 사람은 피를 토하듯 유숭인을 불렀다.

“병사 나리!”

드디어 왜군이 그들을 향해 공격해왔다. 군사 수로나 무기로나 도저히 대적하기 힘든 적이었다. 까마귀 무리도 멀리로 달아나 버렸는지 하늘은 텅 비어 있었다.

“여기가 우리 무덤이 될 것 같소이다.”

“맞습니다. 그러니 부끄럽지 않게 싸우다가 죽읍시다.”

“나라를 위해 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늘이 고맙군요.”

그들이 모두 전사했다는 것을 안 성내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어쩌면 그것은 오래잖아 겪게 될 자신들의 미래 모습이었다.

“이놈들! 이 빚은 필연코 갚아줄 것이다!”

시민이 이를 갈았다. 장졸들은 고개를 처박고 땅을 치며 오열했다.

“장군! 저 철천지원수들을 어찌하오리까?”

“흐, 동족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보면서도 손을 쓰지 못하고…….”

시민이 노랗게 번득이는 눈으로 말했다.

“더 크게 손을 쓰기 위해 그냥 넘어간 거라네. 너무들 억울해하고 서러워하지 마시게. 곧 저놈들 살 타는 냄새와 콸콸 쏟아지는 피 냄새를 맡게 해주겠네.”

시민은 눈물로 그들의 명복을 빌어주며 몇 번이고 복수를 다짐했다. 어쩔 수 없는 막다른 선택이었다. 정3품 목사로서 상급지휘자인 종2품 병사의 입성을 거부한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명백한 하극상이었다. 그렇지만 전투상황에서는 그렇게 할 수도 있는 게 수성장의 권한이기도 했다.

시민이 유숭인을 성 안에 들이지 않았다는 소문을 들은 의병장 곽재우는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며 이렇게 감탄했다.

“이런 계책이 족히 성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으니, 이는 진주사람들의 복이다.”

스물일곱에 아버지를 따라 한양에 들어왔을 때 어떤 관상쟁이가,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되어 천하에 이름을 날릴 것이다’라고 예언했던 망우당 곽재우였다. 그렇지만 유숭인의 죽음은 두고두고 시민의 가슴에 뽑아버릴 수 없는 녹슨 대못으로 꽝꽝 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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