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71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71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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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2. 외원군(外援軍)
성 안에서는 전혀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게다가 고요하기가 절간 같았다. 왜군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겁을 집어먹고 모조리 달아난 게 아닐까?”

“그러게 말입니다. 움직이는 물체는 하나도 보이지를 않으니…….”

제풀에 지친 왜군은 가만히 두어도 기세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럴 때였다. 홀연 성 안에서 종을 치고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질렀다. 포를 쏘았다. 그건 마치‘우리가 여기 있다. 어디 올 테면 어서 이리 와라!’하는 시위 같았다. 왜군은 깜짝 놀라 또다시 거의 무의식적으로 마구 조총을 발사했다. 결국 절딴나는 건 아까운 실탄이었다.

얼마나 교전했는지 알 수 없었다. 전쟁터의 시간은 조금도 흐르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그 반대로 모두 흘러가 버린 것 같기도 했다. 이윽고 연못 속 올챙이 무리처럼 모여 있던 왜군 무리가 흩어져 마을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성 안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수성군들이 수군거렸다.

“저놈들이 또 민가를 노략질하려는 게 아냐?”

“여기서는 잘 보이지가 않으니 좀 그렇구먼.”

땅바닥에서 개미떼가 일렬 종대로 줄을 지어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피난 행렬을 방불케 했다. 조선 군사들이 눈을 부릅뜨고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이놈들은 또 어디로 가는 거야?”

“맞아. 왜놈들 하는 짓도 몰라 부아가 나는데 말이야.”

그 궁금증은 잠시 후에 풀렸다. 왜군들 손에는 문짝, 관(棺) 판자, 누각에 까는 마루 조각 등이 들려 있었다. 그들은 성 밖 100보 되는 곳에다 그것들을 벌여 세워놓더니, 그 뒤에 숨어 엎드려 쉬지 않고 철환을 쏘아댔다. 콩 볶는 듯한 소리가 진동하였다.

다른 왜군들이 또 사방으로 분산했다. 조금 있다가 서쪽에 있는 민가들이 활활 불타기 시작했다. 동쪽에 있는 초가집은 마구 뜯어냈다. 촌가에 있는 죽물(竹物)을 찍어오기도 했다. 조선군은 가증스러운 미소를 흘렸다.

“어? 저건 또 뭐야. 놈들이 짚과 풀을 많이 싣고 오네?”

“별의별 지랄발광을 다하고 있군. 어디 두고 보자고. 이번에는 무슨 허깨비 장난질을 하는지…….”

“죽기 전에 한번 해보고 가게 그냥 내버려둬.”

왜군은 막사를 짓기 시작했다. 떼거리가 많아 공사는 금방 이루어졌다. 길게 늘어선 막사가 6, 7리는 족히 돼 보였다. 그것은 죄다 푸른 포장을 친 탓에 흡사 출렁이는 바닷물같이 느껴졌다. 그 막사는 군사들이 사용했다. 왜장들은 마을 큰 집이나 향교에서 편히 머물렀다. 억지로 여유가 넘침을 과시하려는 듯 꼭 여행을 온 것 같았다.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1시)부터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짐을 실은 소와 말이 동쪽으로부터 끊이지 않고 잇따라 들어왔다. 그들이 지나는 도로 주변은 끝없이 자욱한 흙먼지가 폭삭 일어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러잖아도 바싹 마른 풀잎은 숨 쉬기조차 어려워 보였다. 새들도 그 공기가 싫은지 땅 근처로 내려오지 않았다.

초경 무렵이었다. 적이 한 곳에서 뿔피리를 불었다. 그게 신호인지 이내 여러 군데서 한꺼번에 호응했다. 놈들은 발악하듯 끊임없이 함성을 내질렀다. 사람이 아니라 무슨 짐승 같았다. 요괴가 사람을 홀리기 위해 장난을 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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