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말임 (수필가·어린이집 원장)
모두 닭장에서 벌어진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우리 집 장손인 조카는 나와는 여섯 살 차이로, 초등학교 2학년이 갓 되었을 때다. 아이는 사색이 되어 동그랗게 눈을 치뜨고 손가락이 닭의 꽁무니에 물려 낑낑거리고 있었다. 닭이 알을 어떻게 낳나 궁금해 별렀다가 알을 빼내려고 한 것인데, 알을 보호하려는 어미닭이 손가락을 물고 놓아주지 않아서 일어난 소란이었다. 닭을 진정시키고 손가락을 빼낸 아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달걀이 말랑말랑’하더라고 했다.
밭 매러 가는 올케언니를 따라 조카와 함께 다녔다. 언니는 풀을 매고, 네 살배기 조카는 바가지에 엄마가 뽑아 놓은 풀을 밭둑에 내다 버렸다. ‘아이고, 울 애기 잘하네~’ 엄마의 칭찬에 얼굴이 상기되어 ‘엄마, 풀…’을 외치며 뒤뚱거리며 날랐다. 굳이 풀을 밭둑에 버리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조카를 봐주기로 하고 따라간 시누이는 감꽃을 주워서 목걸이를 만들거나 클로버 꽃을 따다가 손목시계를 만들거나 조카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아이의 안전을 위해 역할을 만들어 주었던 올케언니다.
막내딸로 누려왔던 사랑과 특권을 조카가 태어난 후 송두리째 빼앗겼다. 그런 나에게 조카는 시기와 견제의 대상이었다. 빼앗긴 관심과 사랑을 되찾기 위해서 나는 큰오빠한테 한자 공부를 시켜 달라고 했다. 달력에 써준 천자문을 베껴 쓰고 검열을 받았다. 오빠가 나의 글씨를 칭찬하는 소릴 들은 조카가, 저도 천자문을 쓰겠노라고 나섰다. 할 수만 있다면 손톱으로 까 죽이고 싶었다. 자식 어여쁜 마음을 감추려 애를 써도 오빠의 눈은 반달눈이 되는가 싶더니, 초승달처럼 작아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다.
조카가 라면을 먹고 싶다고 하면 고모랑 먹으라며 올케언니가 끓여 주었다. 서투른 조카 젓가락질에 쾌재를 부르며, 서너 번 젓가락에 돌돌 말아버렸다. 고모의 치졸한 복수에도 조카는 얼굴만 벌게지는 것으로 그만이었다.
훗날 어른이 된 조카에게 어렸을 때 왜 그렇게 참기만 했느냐고 물어보았다.
‘욕심 많은 고모가 제 엄마에게 “엄마”라고 부를까 봐서 내심 가슴 졸이며 살았다’는 고백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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