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75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75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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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2. 외원군(外援軍)
칼을 휘두르며 군사를 지휘하는 시민의 모습을 떠올리며, 조운은 위채의 툇마루에 앉아 어둠에 덮인 비봉산을 하염없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멀리 전라도 김제에서 온 정평구는 둘님이 정성스레 지어준 저녁밥을 먹고 아래채에서 곤한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백성들은 왜군을 피해 성내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깊은 산속 마을로 가버린 탓에, 고을에는 비어 있는 집이 대부분이었다. 조운과 둘님은 부모더러 피신하라고 권했지만 모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비차를 완성시키기 위해 집에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하는 자식들을 두고 자기들만 갈 수는 없다고 했다. 그리하여 조운의 동생 천운과 지운만 성 안으로 들여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들도 그냥 있겠다고 우기는 것을, 아직 젊으니 왜군에게 발각되면 끌려가 그네들이 시키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니 안 된다고 겨우 설득하였다. 하지만 조운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동생들이 그 길로 군인을 지원하여 지금은 시민의 통솔 아래 왜군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작은형! 큰형은 지금도 그 비차라는 것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겠지?”

여기는 성 안. 각자에게 주어진 개인 무기를 점검하며 지운이 천운에게 물었다.

“그럴 거야. 그 비차야말로 위기에 빠진 우리 조선을 건질 귀인을 구할 수 있는 기구라고 하니, 어떻든 빨리 완성시켜야 할 텐데 걱정이야.”

성가퀴 너머로 왜군 진지가 있는 쪽을 노려보며 천운이 대답했다.

“우리 조운이 형이 정말 자랑스러워. 그렇지?”

조심스럽게 칼날에 손가락을 대보는 지운의 말에, 천운도 번쩍이는 자기 창끝에 눈을 둔 채 말했다.

“형도 그렇지만 형수님께서도 대단하셔. 끝까지 피난하지 않으시고 형 옆을 지키려고 하시는 것을 보면…….”

수많은 개미 떼가 성가퀴에 붙어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전투가 시작되면 사람 발에 밟히거나 불에 타서 죽을지도 모르고 한가로이 오가는 그 미물들이 안됐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근데 말이야. 아무래도…….”

문득 천운의 목소리가 변하자 지운이 소스라치는 모습으로,

“왜, 왜? 놈들이 공격을 개, 개시한 거야?”

천운이 얼른 그건 아니란 듯,

“그 여자, 도원…….”

“나이는 들어도 아직 처녀인 그 광녀 말이지?”

형제 눈은 약속처럼 성가퀴에 몸을 숨긴 채 적진을 살피고 있는 다른 군사들을 향했다. 하지만 바짝 긴장하고 있는 수성군들 귀에는 그들 형제가 낮은 소리로 주고받는 이야기가 잘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생사의 갈림길에 처해 있는 그들인지라 무슨 말도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형제는 달랐다. 자기들 목숨도 귀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귀인을 구할 비차라고 보는 그들이었다. 그렇게 여기게 된 데에는 조운의 영향이 컸다. 그 귀인이 잘못되면 나라도 잘못된다. 그런 판인데 혹시라도 그 광녀로 인해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예삿일이 아닌 것이다.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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