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76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76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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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3. 신종(神鐘)은 울리고
“설마 왜놈들이 미친 조선 여자 말을 알아듣겠어?”

서글서글한 눈이 어머니 박씨의 판박이인 지운의 말에, 아버지 술명을 닮아 체구가 우람한 천운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도 모른다. 누가 있든 아무 데서나 그렇게 외고 다니는 노래가 아니냐? 그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같은 소리를 해대니 말이다.”

곧 싸움이 시작되려는 걸까. 남강 건너편 섭천 쪽 대숲에서 까마귀 무리들이 시퍼런 하늘가로 무섭게 몸을 솟구치는 게 보였다. 어쩌면 벌써 피 냄새를 맡고 환장들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운이 깜짝 놀란 것은, 사람 시체를 보면 제일 먼저 달려든다는 그 새들의 불길한 울음소리 때문이 아니었다. 그건 천운의 입에서 들릴락 말락 아주 가늘게 새어 나오는 이런 소리 탓이었다.

“난다 난다 비, 비차. 진주성에 가보자…….”

지운은 난생 처음 보는 사람처럼 천운을 무연히 바라보았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금 전에 자기 입으로 행여 왜군들이 알아들을까 봐 너무도 걱정된다고 했던 그 노래를 읊조리고 있다니?

‘만약 여기 진주성에 하늘을 나는 기구가 있다는 사실을 저놈들이 알게 된다면…….’

그런 비행기구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왜군들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그 신기하고 놀라운 것을 약탈하기 위해 지금보다 몇 배나 더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들 것이다. 조선을 건질 귀인을 구할 기구를 말이다. 그때부터 여자같이 감정이 여리고 섬세한 지운은 크나큰 우려에 휩싸이면서, 그 비차라는 게 벌써 완성되어 거기 성 안 어딘가에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런 환상에 빠지는 거지? 그렇게 자신을 나무라면서도 지운은 구름같이 일어나는 그 상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이제 천운은 입을 다물고 다른 수성군들처럼 적진을 노려보고 있었지만 그가 읊조리던 노랫소리는 여전히 지운의 귀에 남아 있었다.

‘곧 벌어질 왜놈들과의 전투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이렇게 몰아가고 있는 걸까?’

부모를 반반씩 닮은 조운 형이 비차를 완성시키지 못해 그 귀인을 구할 수 없으면, 지금 성 안에 있는 모든 조선 군사들과 민간인들은 적의 손에 목숨을 잃게 되리라는 공포심. 그러자 이번에는 더욱 아연할 일이 벌어졌다. 지운은 들었다.

“비차 비차 비차다. 진주성에…….”

지운은 칼을 잡았던 손으로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남은 한 손은 가슴팍을 쥐어뜯었다. 머리가 빠개질 듯이 쑤시고 가슴은 터질 것같이 아파왔다. 그 노랫소리, 광녀가 아무 곳에서나 누가 듣든 말든 마구 흘리고 다니는 그 소리가 나오는 곳은, 바로 지운 자신의 입 속이었던 것이다.

“지, 지운아! 어, 어디가 안 좋아 그러니, 응?”

크게 놀란 천운이 지운의 어깨를 흔들어대며 소리치고 있었다. 천운은 동생이 지독한 전쟁공포증에 사로잡힌 나머지 발작을 일으킨다고 보았다. 성가퀴 저 아래로 흐르는 남강 물소리가 홀연 적병들이 내지르는 함성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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