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숙 (지경서당장)
이번에는 내가 가서 도와 주려는 순간 노인이 표를 넣고 나가고 있었다. 다시 인사를 하고 계단으로 내려가는 그 뒷모습을 30여 년 전 사상터미널에서 친정아버지가 탄 버스를 바라보듯 보고 있는데 아들이 와서 내 손을 잡아끌었다. “엄마, 우리 그쪽이 아니고 이쪽이야!”라며. “무슨 소리! 내가 이걸 몇 년을 타고 다녔는데.” 나도 맞섰다. “자, 보시지!” 아들은 출구 위에 전광판을 가리켰다.
“어, 그 할아버지 어떡하지!” 탄식이 절로 터졌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노인은 반대편으로 이미 달리고 있어서. “그러게 그냥 우리랑 같이 타고 가자고 엄마가 말하지!” 나는 아들의 이 구박을 달게 받아야 했다. 아들은 우리가 당리역에서 내리니 노인이 초량역에서 내리면 된다는 것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다만 경험만 믿었던 오만의 대가가 비참했다. 아들 앞에서 엄마 체면 제대로 구겼다. “왜 그랬지?” 그동안 아무리 내가 촌에서 나이를 먹었기로, 그새 서면역이 좀 복잡해졌기로. 결혼 전 10년이 넘도록 타고 다닌 노선이라 아예 안내판을 볼 생각을 안 한 게 화근이었다.
노인이 지하철 노선도를 보거나 물어서 연산동에서 환승을 했을까, 노포동까지 갔다가 타고 나왔을까. 날씨도 더웠는데. 노인께 사서 고생을 하게 해서 아직도 미안하다. 아이 어른을 막론하고 첫 경험이 즐거워야 재도전도 쉽게 하는 법인데.
그나마 나는 오늘 이 분께만 이런 안내를 해서 그래도 다행이다. 지금도 어떤 교사들은 자기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어떤 종교지도자들은 자기를 따르는 신도들을, 어떤 정치지도자들은 자신을 지지해준 국민들을 반대 방향으로 안내하는 실수를 하고 있지 않은지. 지도나 표지판을 볼 생각도 안한 채 자신의 그 알량한 경험만 믿고. 그 여파가 얼마나 치명적인 파장을 일으키는지도 모른 채.
이상숙 (지경서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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