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말임 (수필가, 어린이집 원장)
나의 임종 장면을 상상했다. 아들의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눈앞이 어룽거리고 목이 메여 온다. 아들에게 할 말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아들이 사는 동안 현명하게 살기를 바라는 말들을 늘어놓게 되고 ‘잊지 말아라, 당부한다’라는 말을 반복하게 된다. 결정적으로 멋있는 말을 한마디 쓰려고 했더니, 세상에 있는 좋은 말들을 다 옮겨놔도 부족한 듯하다. 훈육의 성찬이다. 평생 동안 쏟아부은 잔소리도 모자라 죽어서까지 잔소리를 늘어놓나 싶기도 하다. 이렇게 저렇게 써도 성에 안 차서 다시 쓰기를 반복하는 사이에 눈이 퉁퉁 부어 있다.
2013년 7월 7일. 아시아나 항공의 샌프란시스코 추락사고 현장을 텔레비전에서 보며 해외여행을 떠나기 전에 유언장을 써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항공기가 추락하는 그 순간에 탑승자들의 절박한 외침이나 가족들의 형언할 수 없는 안타까움은 마지막 말 한마디도 전할 수 없다는 것에서 더욱 원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재산목록과 들어 둔 보험을 세세히 적었다. 은행대출, 신용카드 결제일도 기록했다. 그리고 은혜 입은 분들, 친하게 지냈던 분들과의 인연을 내가 떠난 후에도 이어가기를 당부했다. 명절과 특별한 날에 예를 차려야 한다는 것과 정기적으로 전화를 꼭 드리라는 말도 썼다.
장례에 관한 언급도 했다. 납골평장이나 매장, 수목장, 자연장 등 장례문화가 많지만 화장(火葬)이 대세인 요즘이다. 세상이 그렇더라도 장례식은 사자(死者)의 고유권한으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막내로 자라서 그런지,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고향의 부모님 산소를 찾곤 한다. 아버지가 즐겨하시던 술 한잔 올리고 엄마가 드셨던 ‘환타’를 준비한다. 봉분에 웃자란 잡풀을 골라 뽑을 땐 엄마의 흰 머리칼을 뽑는 감회에 젖기도 한다. 부모님 무릎에 누워 어리광부렸던 어투로 “엄마, 나 힘들어. 속상해…” 훌쩍이며 중언부언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비 갠 후 햇살처럼 청량해진 마음이 된다. 그렇게 새로운 힘을 얻어 씩씩하게 일상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것은 나의 경우이고, 아들이 어미 무덤에 와 위안을 받을지, 원망을 풀어 놓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일. 결국 장례는 남은 사람의 일이므로 그 또한 가족들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라는 것도 밝혀 두었다.
“공부해라. 기회는 준비되어 있는 자에게만 주어진다.” 평생 강조해 온 말을 마지막으로 다진다.
박말임 (수필가·어린이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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