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장
유언장
  • 경남일보
  • 승인 2014.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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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말임 (수필가, 어린이집 원장)
‘유언장’이라는 제목을 썼다. 한숨은 왜 나오는 걸까. 이러저러한 내용을 써야겠다고 생각은 해왔다. 법적으로 유효한 형식에 맞춰 주소와 성명, 주민번호를 적었다. 그리고선 망연하게 앉아 깜박거리는 커서만 보고 있다.

나의 임종 장면을 상상했다. 아들의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눈앞이 어룽거리고 목이 메여 온다. 아들에게 할 말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아들이 사는 동안 현명하게 살기를 바라는 말들을 늘어놓게 되고 ‘잊지 말아라, 당부한다’라는 말을 반복하게 된다. 결정적으로 멋있는 말을 한마디 쓰려고 했더니, 세상에 있는 좋은 말들을 다 옮겨놔도 부족한 듯하다. 훈육의 성찬이다. 평생 동안 쏟아부은 잔소리도 모자라 죽어서까지 잔소리를 늘어놓나 싶기도 하다. 이렇게 저렇게 써도 성에 안 차서 다시 쓰기를 반복하는 사이에 눈이 퉁퉁 부어 있다.

2013년 7월 7일. 아시아나 항공의 샌프란시스코 추락사고 현장을 텔레비전에서 보며 해외여행을 떠나기 전에 유언장을 써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항공기가 추락하는 그 순간에 탑승자들의 절박한 외침이나 가족들의 형언할 수 없는 안타까움은 마지막 말 한마디도 전할 수 없다는 것에서 더욱 원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재산목록과 들어 둔 보험을 세세히 적었다. 은행대출, 신용카드 결제일도 기록했다. 그리고 은혜 입은 분들, 친하게 지냈던 분들과의 인연을 내가 떠난 후에도 이어가기를 당부했다. 명절과 특별한 날에 예를 차려야 한다는 것과 정기적으로 전화를 꼭 드리라는 말도 썼다.

장례에 관한 언급도 했다. 납골평장이나 매장, 수목장, 자연장 등 장례문화가 많지만 화장(火葬)이 대세인 요즘이다. 세상이 그렇더라도 장례식은 사자(死者)의 고유권한으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막내로 자라서 그런지,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고향의 부모님 산소를 찾곤 한다. 아버지가 즐겨하시던 술 한잔 올리고 엄마가 드셨던 ‘환타’를 준비한다. 봉분에 웃자란 잡풀을 골라 뽑을 땐 엄마의 흰 머리칼을 뽑는 감회에 젖기도 한다. 부모님 무릎에 누워 어리광부렸던 어투로 “엄마, 나 힘들어. 속상해…” 훌쩍이며 중언부언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비 갠 후 햇살처럼 청량해진 마음이 된다. 그렇게 새로운 힘을 얻어 씩씩하게 일상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것은 나의 경우이고, 아들이 어미 무덤에 와 위안을 받을지, 원망을 풀어 놓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일. 결국 장례는 남은 사람의 일이므로 그 또한 가족들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라는 것도 밝혀 두었다.

“공부해라. 기회는 준비되어 있는 자에게만 주어진다.” 평생 강조해 온 말을 마지막으로 다진다.

박말임 (수필가·어린이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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