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석루에서 만나는 명현들
촉석루에서 만나는 명현들
  • 경남일보
  • 승인 2014.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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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강진 (동서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진주성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관광 공간이다. 남강가의 절벽 위에 자리 잡은 촉석루는 절경의 묘미를 만끽하는 데 더할 수 없는 장소다. 무엇보다 임진왜란 순국 영웅들의 강직한 기개가 도처에 있기에 연간 약 200만 명의 발길을 붙들고 있다. 논개는 촉석루에 내재된 문화적 기억의 핵심요소다. 누각 곁의 의기사는 필수 관람코스다. 영정을 경배한 뒤 아찔한 의암에 다다라서는 왜장을 껴안고 몸을 던진 논개의 절의 정신을 엄숙하게 상기한다. 그리고 충의지사를 경모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나 비석들도 불굴의 민족사를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한다.

선열들이 보여준 치열한 대외항쟁과 거룩한 조국사랑은 수백 년간 촉석루에 교직된 본질적 가치라 하겠다. 예로부터 누각을 방문한 시인묵객들은 시나 문장으로써 이를 내면화하고자 노력했다. 후대인들은 앞 시대의 작품을 읽으며 충절정신을 계승하고 창작을 지속함으로써 누각의 존재 이유를 각인시켰다. 다시 말하면 저명한 인물들이 왕래하며 수준 높은 저작을 남겨 놓았기에 촉석루의 명성이 빛날 수 있었던 것이다.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관광 콘텐츠는 저명한 인물들과 연계된 것이 많다. 여기서 생각해보는 것이 촉석루와 연관된 인사들이다. 퇴계 이황하면 경북 동을, 다산 정약용하면 전남 강진이나 경기도 남양주를, 면암 최익현하면 일본 대마도를, 매천 황현하면 전남 광양이나 구례를 먼저 떠올린다. 해당 지역에서는 이들을 관광자원화해 해마다 국내외 여행객을 무수히 불러들인다.

진주는 이들과 과연 무관한 도시인가. 그렇지 않다. 퇴계는 33세의 젊은 시절 촉석루에 올라 인생사의 짙은 고뇌를 곱씹으며 변화무상한 세상의 깊은 이치를 탐색했다. 다산은 경상우병사였던 장인과 진주목사였던 부친의 벼슬살이 인연으로 촉석루를 유람하며 우국충정을 내면화하는 한편 마마의 여파로 죽은 아들에 대해 통한의 심경을 드러냈다. 면암은 일흔 나이에 촉석루를 비롯한 사적들을 둘러보며 비분강개함을 격정적으로 토로함과 동시에 진주지역 선비들에게 매서운 시대정신의 실천을 촉구했다. 매천은 촉석루에 올라 풍전등화의 조국 운명을 걱정하는 시를 지었다.

하지만 진주성에서 각별한 사연이 있었던 퇴계나 면암을 만날 방법이 없다. 기억할 만한 자취가 마땅히 없기 때문이다. 매천과 다산은 그나마 의기사에 현판이 있어 다행이지만 한문이라 내용 파악이 용이하지 않다. 현장에서의 콘텐츠 부족으로 탐방객들이 혹여 지척에서 발걸음을 되돌린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이 선현들의 올곧은 정신세계는 교육적 가치가 높다. 진주의 문화정체성 지수를 높이는 인문자산으로서 널리 공유해야 한다.

하강진 (동서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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