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80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80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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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3. 신종(神鐘)은 울리고
그것은 지상에 있는 인간들이 내는 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그에 못지않은 역할을 한 게 바로 저 연지사종이었다. 일찍이 보묵 스님이 조운의 부모에게 보여주며 예언한 바 있었던 그 연지사종.

“땡, 때-앵! 땡, 때-앵!”

그 소리야말로 수성군 가슴에 부처님의 가호(加護)로 울려 퍼졌다. 신불이 힘을 베풀어 잘 비호해 주고 있으니 무엇을 두려워하고 누구를 무서워하랴.

“수백 년 전 조상의 혼이, 지금 우리 후손들을 지켜주고 있소이다!”

시민이 감격에 찬 목소리로 장수들에게 말했다.

“조선을 영원히 구원해 줄 신종(神鐘)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장수들 얼굴에도 감사와 흥분의 빛이 가득 흘러넘쳤다. 수성군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외쳤다.

“저 종이 있는 한 우리는 무사할 것이다!”

한편 성 안에서만 그런 게 아니었다. 왜군들 진지에서는 다른 쪽으로 더 야단이 났다.

“대체 저 종이 무슨 종이라더냐?”

왜장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휘하 병사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들이 투정부리듯 말했다.

“무슨 놈의 종소리가 저렇게 우렁찬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조총소리가 저 종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을 정돕니다.”

“무엇보다 저 소리만 나면 이상하게 온몸에서 기운이 쫙 빠지면서, 그만 싸울 기분이 나질 않으니 그게 더 큰일입니다.”

“조선종 때문에 부정을 타는 거야, 우리가.”

“우리가 성벽을 타고 올라갈 때 위에서 저 종을 아래로 밀어버리면, 우리는 그 밑에 깔려 전멸 당할지도 몰라.”

왜군들은 미칠 지경이었다. 어떤 보이지 않는 소리의 손이 조선군을 보호해 주고 있는 듯했다. 또한 그것은 자신들을 향해 무섭게 꾸짖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왜장이 이빨을 가는 소리로 시부렁거렸다.

“언젠가는 저 종을 빼앗아 우리 일본국으로 가져갈 것이다!”

여기는 다시 성내였다. 동문을 지키는 진주판관 성수경과 남문을 맡는 율포권관 이찬종, 그리고 구북문을 책임지고 있는 수성대장 최덕량 등이, 총지휘소에 있는 시민에게 몰려와 감탄해 마지않았다.

“참으로 비범하고 훌륭한 전술을 생각해 내셨습니다.”

“저 소리를 들은 군사들이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적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켜 전의를 상실케 하는 효력도 있을 것입니다.”

시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싸움에 임하는 군사들 마음이야말로 어떤 무기보다도 강하고 무서운 힘을 발휘할 것이오.”

진주성의 밤은 악공들 악기소리 속에 깊어갔다. 연지사종도 불침번을 서는 조선군 병사처럼 잠들 줄을 모르고 자신의 존재를 모두에게 알렸다. 별들도 눈을 반짝이며 그 소리에 홀려 있는 것 같았다. 살벌한 총칼 끝에 한없이 평화롭게 느껴지는 달빛이 묻어났다. 시간은 진주성을 감돌아 흐르는 남강물처럼 흘러 다음 날로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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