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엄마 폰 새 엄마 폰
옛날 엄마 폰 새 엄마 폰
  • 경남일보
  • 승인 2014.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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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 (지경서당장)
현관문을 나섰던 터라 창문을 두드렸다. “옛날 엄마 폰? 새엄마 폰?” 안에서 되물었다. 나는 말을 안 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야, 누가 들으면 네 엄마 둘인 줄 알겠다. 옛날 엄마와 새엄마! 지금 우리가 이걸 말로 하니까 그나마 다행이지 글로 썼으면 딱 오해받기 좋겠다.” 그러나 상대는 자기가 너무 무심코 한 말이라 기억도 못하고 있어서 내 말에 감을 못 잡았다.

하기야 ‘옛날 엄마 폰과 새엄마 폰’도 ‘옛날 엄마폰 새엄마폰’으로 쓰면 띄어쓰기 규정에 어긋나서 그렇지 의미전달에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러니 국어 서술형 시험도 대입 에세이도 아닌데 굳이 들어와서 “엄마 옛날 폰 엄마 새 폰”으로 쓰는 게 맞다고 잔소리까지 할 건 없었다. 모자지간에 지극히 사적인 말인데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랴. 우리가 새엄마 새 아들 관계도 아니고. 아마 한창 말을 배울 때 엄마인 내가 이런 태클을 걸었다면 아이가 어법이 틀릴까 겁이 나서 말을 제대로 못 배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글은 이 경우와 다르다. 더욱이 그 글이 공공기관의 얼굴인 간판일 경우에는. 홈페이지에는 분명 “새로운 하동 더 큰 하동”이라고 되어 있는데 군청이나 읍사무소나 농업기술센터에 ‘새로운 하동 더큰 하동’이라고 달려 있다. ‘더’와 ‘큰’이 붙어 있다. 그런데 단 사람들도 보는 사람도 “그 기 그 기지!”라고 그냥 받아넘기려 든다. 심지어 “그깟 띄어쓰기 한 자 잘 못했다고 그럼 관내에 다 다시 만들어 달아야 하냐”며 오히려 면박이다. 이럴 때는 ‘아는 게 병이고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에서 처방전을 스스로 내려 받는다.

그때마다 남편은 그러니 너무 그리 따지지 말고 못 본 체 제발 넘어가라며 아이들에게 이런 엄마랑 사느라 고생이 많다는 말로 투사(投射)를 한다. 그럴 거면 한두 개도 아니고 군민 혈세를 들여서 굳이 저렇게 많이 만들어 달 이유가 뭐냐고 나는 더 깊이 판다. 그래봐야 혈압만 오르고 입만 아프지만. 그럼에도 새벽 세시에 이 글을 또 쓰고 있다. 차라리 잠이나 자지.

‘맨 처음 원본이 잘못 되었을까. 간판을 만들면서 실수가 있었을까. 왜 완성품을 승인 받기까지의 몇 단계 과정에서 실무자들이 이걸 바로 걸러내지 못했을까.’ 생각할수록 아쉽다. 공인 한 사람의 역할이란 이런 것이다. 숨은 공은 그리 크게 표가 안 나도 하찮은 실수 하나는 전 간판을 다시 제작하느냐 마느냐의 논란까지 가져 올 수 있다. 외지인이나 관광객들로부터 왜 저렇게 써 달았느냐면 이건 군민 자존심에도 문제가 되니까. 바로 이래서 국어가 영어보다 더 갑이다. 간판을 만드는 이에게도 일을 시키는 이에게도.

이상숙 (지경서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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