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영웅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어야
거대 영웅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어야
  • 경남일보
  • 승인 2014.08.1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강진 (동서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영화 한 편이 극장가를 휩쓸고 있다. 역대 흥행기록을 새로 쓰고 있는 ‘명량’이다. 이순신 장군이 겨우 12척의 배로 330여척 왜선을 격파해 세계 해전사에 길이 빛나는 ‘명량대첩’을 소재로 한 것이다. 예전에 소설, 드라마, 영화를 통해 여러 차례 다루어졌음에도 다시 이순신 돌풍이 휘몰아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적의 위대한 전쟁이 벌어진 명량(鳴梁)은 진도와 해남 사이의 좁은 해협을 말한다. 암초에 부딪친 거센 조류의 소용돌이치는 소리가 산하를 울리는 바닷목이라는 뜻에서 한글로 ‘울돌목’이라 부른다. 필자는 5월초 맹골수도의 세월호 참사로 슬픔이 모두를 짓누를 때 이곳을 찾았다. 명량은 유족이 머물던 팽목항으로 가는 지점에 있어 반드시 거쳐야 했다.

파도소리가 울음으로 변한 팽목항은 처절했다. 눈앞에서 벌어진 참극은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적폐의 소산이었다. 지난주 여야 원내대표가 뒤늦게 세월호 특별법을 합의하자마자 핵심이 빠졌다며 재협상을 촉구하는 각계의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설령 법이 시행되더라도 증인채택을 둘러싸고 지지부진할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평상시 국가시스템의 작동 수준이나 사후 대응조치가 이토록 한심할진대 만일 중대한 위기라도 닥친다면 어떻겠는가.

이순신 장군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장수들을 불러 모아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한 사람이 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고 독려하며 극단의 두려움을 필승의 용기로 바꾸었다. 수군들을 면밀하게 지휘하는 한편 자신은 함대 선두에 서서 적들을 쳐부수어 전세를 단박에 뒤집었다. 스스로를 불쏘시개로 삼아 나라와 백성을 위기에서 건져낸 희생적 리더십은 시대를 불문하고 국민적 공감과 존경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진도의 옛 명량과 오늘의 맹골수도가 극명히 대비된다. 현재의 이순신 신드롬은 세월호 비극을 총체적 사회위기를 척결하는 단초로 인식하지 못하는 위정자들에 보내는 묵시적 경고이다. 가짜 지도자가 판치면 민심 이탈은 가속화되어 언젠가는 폭발한다. 1862년 진주농민항쟁이 도화선이 되어 삼남지역을 휩쓴 민중저항을 원천 스토리로 삼은 영화 ‘군도’가 여실히 보여준다.

백척간두의 난세에 충신을 안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구국 영웅이나 의적(義賊)은 엄청난 희생을 전제로 출현했다는 사실이다. 건강한 사회는 거대 영웅을 필요치 않는다. 우리들 자신이 생활 속의 위인이 되어야 한다. 불이익을 무릅쓰고 양심과 용기로 세상을 바꾸는 인물, 서민 행복을 최우선시하는 공직자가 일상적 영웅의 예이다. 이런 리더가 많아야 난세를 막는다.

하강진 (동서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