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덱스 창업자 프레드 스미스
그가 물류회사를 설립하게 된 사연은 참 흥미롭다. 1965년 예일 대학에서 경제학과목을 수강하던 중에 새로운 화물수송 시스템에 관한 학기말 리포트를 제출하였다. 보고서의 내용은 미국 내 인구밀집지역에 화물집결지인 허브(hub)를 만들어서 모든 화물을 여기에 집결시켜 재분류한 다음, 자전거 바퀴살(spoke) 모양으로 미국 전역에 배송하자는 구상이 담긴 것이었다. 그러한 아이디어는 자전거 바퀴살(spoke)을 보다가 얻은 것이었는데 담당 교수는 “발상도 흥미진진하고 구성도 좋다. 그러나 C학점 이상을 받으려면 실현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며 그에게 C학점을 주었다. 그러나 스미스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옳은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는 좀 더 구체적으로 화물배달의 접수에서부터 배달완료까지 전체를 포괄하는 화물전용 항공시스템을 설계해내었다. 항공기와 트럭이라는 상이한 운송수단을 결합해 물품을 24시간 안에 배송하는 시스템이었다.
프레드 스미스가 1970년대 페덱스를 창업하기 직전 상황은 물류 대기업인 USPS(미국 우체국 시스템)와 UPS가 이미 미국을 주름잡고 있었다. 풍부한 자원과 인프라를 갖춘 독점적인 기업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리포트에서 제시했던 허브&스포크(매트릭스) 시스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과감하게 창업을 결심하고 거대기업들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던 것이다. 당시 UPS를 비롯한 모든 배달 업체들은 페덱스가 곧 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첫 항공운송은 회사가 물류의 허브로 삼았던 미국 멤피스 국제공항에서 1973년 4월 27일에 이루어졌다. 영업 첫날, 소형 항공기 8대로 이루어진 페덱스의 수송선단이 25개 도시를 잇는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고작 186개의 화물 밖에 접수되지 않았다.
그는 초창기 5년 동안은 거의 파산상태에 빠져 힘든 시기를 겪어야 했다. 그러한 파산 위기 속에서도 그는 당당히 직원들에게 회사에 계속 남아 일을 할 것을 강력하게 권했다. 그러면서 그는 초창기 멤버들에게 스톡옵션을 약속했다. ‘직원 존중이 곧 이윤 창출’이라는 경영 이념을 지닌 그의 열정과 카리스마는 직원들의 열정과 충성을 이끌어내면서 신뢰감을 주는 한편, 분명한 비전을 공유하면서 함께 걸어갔다. 초창기 창업 멤버들은 스미스에게 시계와 귀금속을 팔아 직원들의 임금에 보태라고 까지 할 정도로 그의 열렬한 추종자이자들이었다. 페덱스가 급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스미스가 사업의 정체성을 화물의 배달이 아니라, 고객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는 것으로 규정하면서부터다. 그는 이 철학으로 화물추적시스템을 갖춘 최초의 운송회사를 만들었다. 고객들은 페덱스가 자체 개발한 컴퓨터 시스템 ‘코스모스(COSMOS)’를 통해 자신이 의뢰한 수하물이 지금쯤 어디에 있는지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게 되었고, 페덱스는 고객의 마음을 얻어 고객만족에 성공함으로서 전 세계 물류 운송의 일인자가 되었다.
‘페덱스라면 가능합니다.’라는 광고 카피라이터에는 프레드 스미스 회장의 한계에 도전하는 그의 긍정적이고 역동적인 철학이 담겨있다. 오늘날 페덱스는 전 세계 215개국에서 30만 8,000명 이상의 종업원과 643대의 자체 보유 화물기, 4만3000여대의 차량이 하루 평균 310만개가 넘는 화물을 실어 나르는 초일류 기업이 되었다. 2013년 매출은 450억 달러(약 46조6830억원)에다 세전 이익이 31억9000만 달러였고 시가 총액은 171억 달러나 된다. 그래서 많은 경제학자들이 익일배달서비스의 신화를 창조한 ‘페덱스(FedEx)’를 ‘연구대상 1호 기업’으로 꼽을 정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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