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교수의 의학이야기
김동훈 교수의 의학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14.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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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폐정지
1732년, 스코틀랜드의 외과 의사였던 윌리엄 토삭은 호흡이 없는 환자에게 인공호흡을 시도한 경험을 발표하였다. “나의 입을 환자의 입에 가까이 대고 힘껏 숨을 불어넣었지만, 양쪽 콧구멍을 통해 모두 새어나오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한손으로 그의 콧구멍을 막고 다시 숨을 불어넣었고 환자의 가슴이 팽창되는 것이 볼 수 있었다. 곧 맥박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글은 학계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지만 금세 잊혀졌다. 이 후, 수세기동안 심폐소생술의 기술의 발전은 거의 전무하였고, 간간히 고안된 방법들은 극히 낮은 성공률로 사장되곤 하였다. 20세기 초반, 두 차례 세계대전과 수많은 국지전쟁을 통해 수많은 외과적 임상경험이 축적되었고, 많은 의사들은 심폐정지 환자를 소생시키기 위해 가슴을 열고 심장을 직접 손으로 쥐어짜는 개방 심장 압박술을 시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개방 심장 압박술의 소생 성공률은 여전히 매우 낮았으며, 일정 수준의 외과적 시설과 인력이 필요하였고, 보편화되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었다. 또한 병원에 도착하는 대부분의 환자는 심폐정지가 발생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경우가 대부분으로 심장이 소생한다 해도 심한 뇌손상으로 인해 식물인간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1958년, 근대 심폐소생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사파는 정상인의 날숨을 통해 호흡이 멈춘 환자에게 충분한 양의 산소를 제공할 수 있으며, 구강대구강 인공호흡법을 체계적으로 교육, 일반인들도 쉽게 시행할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또한, 1960년 독일의 공학자였던 쿠벤호벤은 동물 실험 도중, 우연히 가슴을 압박하면 맥박이 만져진다는 사실을 발견하였고, 이는 가슴을 열지 않고 가슴을 압박하는 것만으로도 혈액 순환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획기적 발상의 전환을 가져왔다. 이러한 사파와 쿠벤호벤의 아이디어가 합쳐져, 1961년 인공호흡과 흉부압박으로 구성된, 현재 우리가 시행하고 있는 심폐소생술의 모습이 갖추어지게 되었다.

심폐정지는 심장 박동이 사라지면서 혈액 순환이 정지하며, 호흡이 멈춤으로서 산소공급이 없어진다는 의미로, 심폐정지 후 4분이 지나면 뇌손상이 시작되며, 6분후에는 뇌사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며, 10분 후에는 대부분 생물학적으로 사망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 말은 심폐정지가 발생한 환자는 10분 안에 완전 사망 상태에 이르게 되며, 온전히 소생하여,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 즉 뇌 손상을 받지 않은 상태로 소생할 수 있는 시간은 5분 내외라는 것이다. 이것은 심폐정지가 일어난 환자의 자연 경과이며, 인공호흡과 흉부압박으로 심장 박동과 호흡을 인위적으로 발생 시키면, 즉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게 되면, 이 시간은 10분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다.

야구선수 임수혁, 개그맨 김형곤은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급성 심폐정지의 예이다. 건강한 삶을 살던 사람이 돌연사, 심장마비 등으로 일컬어지는 급성 심폐정지로 갑자기 사망하는 경우, 그 원인은 대개 심실빈맥, 심실세동으로 알려져 있는 악성 부정맥이다. 이는 심장 질환을 앓고 있었던 사람에게서도 나타나지만, 겉으로 보기엔 매우 건강했던 사람에게도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악성 부정맥은 인공호흡과 흉부압박만으로는 정상으로 되돌릴 수 없으며, 심장에 전기 충격을 가하는 제세동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전기 충격, 제세동은 병원 내에서 의사만이 시행할 수 있는 매우 고차원적인 치료방법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예전에는 의사들도 그렇다고 여겼다. 병원에 도착하기 전, 일반인이나 119 구급대원이 시행할 수 있는 것은 심폐소생술이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이미 구시대의 것이 되었다. 현대 심폐소생술은 인공호흡, 흉부압박에 더해 제세동까지 포함하고 있으며, 의사가 아닌 의료관계종사자들도 단시간의 교육을 통해 제세동을 시행할 수 있도록 자동 제세동기라는 기계가 고안되어 사용되고 있다.



우리의 가족 중 누군가가 갑자기 쓰러져 숨을 쉬지 않고, 심장이 멎었다. 남은 시간은 6분이다. 119에 신고한 후, 인공호흡과 흉부압박을 하면서, 6분이라는 시간을 10분, 15분으로 만든다. 구급대가 도착하여, 자동 제세동기를 부착하고 제세동을 실시하고 악성 부정맥이 정상 박동으로 되돌아온다. 구급차에 태워져 병원으로 옮겨진 후, 응급실에서 적절한 조치를 통해 소생하고, 2~3일 후엔 거짓말처럼 예전이 모습을 되찾는다. 죽음의 문턱에서 마지막 생명의 끈을 부여잡고 있는 나의 소중한 사람이 돌아오는 것이다. 최상의 시나리오다. 하지만 이것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 해피엔딩이다. 적절한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최소한 자동제세동기를 통한 제세동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아야 하며, 만약을 대비하여 사용법을 익히고 있어야 한다. 인생은 영화처럼 아름다운 기적을 선사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약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보자.

/경상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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