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우(尙友; 고귀한 사귐)
상우(尙友; 고귀한 사귐)
  • 경남일보
  • 승인 2014.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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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 (지경서당장)
카퍼레이드 중에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 중인 김영오씨의 노란 편지를 받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걸 곁에 있던 경호원에게 안 주고 자신이 입고 있던 흰 수단 주머니에다 살며시 넣었다. 이 장면에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영혼이 맑은 이는 남의 눈을 피해 대낮에 우물물을 길러 나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다가가 말을 거신 예수를 봤을 것이다. 눈이 밝은 이는 장발장에게 은촛대를 내준 미리엘 주교를 보았을 것이다.

어느새 우리도 모르게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사라져 간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을 감안할 때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의 파격적인 이 행보들은 마치 2000여년 전 성서 속에 그 예수가 걸어 나온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특히 꽃동네에서에서 장애아동들에게 안수하며 보여준 할아버지의 그 미소는 그런 상상을 하기에 충분했다. 생명에 대한 외경과 복음의 진정성이 없이는 표출될 수 없는 영혼을 움직이는 그 그윽한 눈웃음에서도 사도행전의 바울을 대면하는 것 같았다.

한 신자는 교황이 공항에서 소형차 소울에 오르는 것을 보면서 자신은 평소 에쿠스를 타면서도 벤츠를 타지 못하는데 대해 가지고 있었던 불만이 얼마나 잘못된 신앙인의 자세였는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이가 어디 그뿐이겠는가. 교황이 탄 소울은 우리가 사회적 지위나 우리의 인격보다 타고 다니는 차가 더 비쌀 때 그게 본인을 얼마나 초라하고 부끄럽게 하는 일인지를 알게 해줬다.

특히 선거로 공직의 자리를 얻기 무섭게 맨 먼저 자기가 타고 다닐 차부터 고급차종으로 바꾸려 드는 우리의 관행을 보면 소울을 탄 교황의 행차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주일이면 고급 외제차에 명품 브랜드로 치장한 가족들을 태우고 교회로 성당으로 몰려다니며 설교와 강론에 대해서 비평하는 평론가들이 너무 많아진 한국교회에 큰 울림을 주었을 것이다.

단원고 고(故)이승현 군의 아버지 이호진 씨가 교리공부 과정도 생략한 채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세례성사를 받는 모습을 보자니 맹자의 ‘상우(尙友·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옛사람을 벗으로 사귄다. 고귀한 사귐)’라는 말과 함께 뜬금없이 이황의 시조가 생각난다.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봇 뵈/고인을 못 뵈도 녀던 길 알페 잇네/녀던 길 알페 잇거든 아니 녀고 어쩔고.”

예수와 프란치스코를 직접 우리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들이 행한 길을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줬다. 이제 교황이 행한 길이 우리 앞에 있으니 우리가, 특히 우리 성직자와 정치가들이 아니 행하고 어쩔까.
이상숙 (지경서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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