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96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96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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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1. 역사(歷史)의 얼굴
동녘이 희끄무레하게 터왔다.

조선군은 그만 깜짝 놀랐다. 밤새 토성(土城)이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총지휘소인 촉석루에 모든 장수들이 모였다. 그날따라 저 아래 남강 물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속에 긴급회의가 열렸다.

“왜적이 만든 대나무사다리가 수천 개는 되는 것 같습니다.”

성수경이 적진을 노려보며 무겁게 입을 떼었다. 수성의 급소이자 적의 공세가 가장 치열한 동문을 지키는 그는, 수성군 장수 가운데 가장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이건 예사 일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저 사다리는…….”

기실 조선군에겐 너무나 위협적인 구조물이 아닐 수 없었다. 넓은 사다리를 만든 다음 그 사이를 대나무로 아주 조밀하게 엮었는데 너비가 한 칸이나 되었다. 그 위에다가 멍석을 덮어 비늘처럼 잇달아 배치하여 여러 군사들이 곧장 올라갈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아, 저길 보십시오. 3층으로 된 산대(山臺)입니다.”

전 만호 최덕량이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에 바퀴를 달아 빙빙 돌리며 밀고 들어올 계획인 듯합니다.”

그러자 그와 함께 구북문을 지키는 영장 이눌도 불안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모두 범 같은 장수들이지만 해괴망측한 적의 무기 앞에서는 질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학자이자 의병장인 낙의재 이눌. 왜군이 침략하여 동래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지 나흘 만에 거주지 경주에서 ‘천사장(天使將)’을 칭하면서 의병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몇 년 후 통제사 원균이 싸움에서 패하자 월성으로 부대를 옮겨 대구에서 격전을 펼치다가 부상을 입게 되고, 전쟁이 끝난 뒤 서실(書室)을 중건하여 학문에 힘쓰지만 부상당한 부위가 악화되어 숨을 거두게 된다.

“저 무기는 우리에게 상당한 압박이 될 것입니다.”

남문을 책임 진 율포권관 이찬종이 불안과 걱정이 섞인 얼굴로 시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대로 앉아 당할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웬일인지 시민은 가타부타 얼른 대답이 없었다. 그러자 모두가 더욱 굳은 표정들이 되었다. 시민의 그런 반응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거기 누구도 몰랐지만 그는 왜군이 만든 대나무사다리 위로 겹쳐 나타나는 무언가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비차였다. 아직 뚜렷한 형상을 그려낼 수는 없었지만, 대나무만 보면 그는 언제나 조운이 만들고 있을 그 비행기구를 떠올렸다. 모르긴 해도, 왜놈들이 만든 어설프고 조잡하기 그지없는 저런 것들보다는 훨씬 더 훌륭할 것이었다.

‘가증스러운 놈들 같으니라고! 어디서 함부로 저 신성한 나무를 가지고 저런 형편없는 장난질이란 말이더냐?’

그렇게 곧고 깨끗한 조선의 대나무를 왜군들이 제멋대로 베어내어, 그것도 조선 백성을 해치려고 저따위 것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시민은 분노가 치솟고 치가 떨렸다. 조운이 저것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가 차기도 했다.

“장군, 어서 무슨 대책을 세워야지요.”

다급해진 장수들을 대표하여 성수경이 또 재촉했다. 금방이라도 적의 공격이 시작되고 꼼짝없이 당하고 말 것 같은 위기감이 촉석루를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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