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이 새는 집
지붕이 새는 집
  • 경남일보
  • 승인 2014.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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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 (지경서당장)
“나라의 뿌리는 백성이다. 백성의 목숨을 잇게 하는 것은 식량이다. 식량을 두고 백성을 굶어 죽게 해서야 되겠는가? 창고를 열라. 이것이 죄라면 내가 달게 받겠다.”

천리안(千里眼)의 고사로 유명한 양일(楊逸)이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그 기근으로 사람들이 굶어 죽어 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식량창고지기는 중앙정부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며 창고문을 열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다.

이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지는가. “사람들이 저렇게 죽어나가는 게 보이지도 않는가. 창고를 열라!”며 직속상관 격인 양일이 아무리 명령하고 설득을 해도 창고지기는 고개를 숙인 채 한발로 땅만 툭툭 차며 듣는 둥 마는 둥하다가 “그래도, 그래도 저는….”만 연발하고 있다. 복지부동이란 바로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 같다. 이 얼마나 환장하고 속이 터질 노릇인가.

“창고를 열라! 이것이 죄라면 네한테는 책임 안 묻고 내가 달게 받겠다.” 역시 양일이다. 이런 위민의식(爲民意識)을 가진 공직자가 왜 지금은 보이지 않는가. 이 양일이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현장을 지휘했다면, 여야 대표로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면 그 결과가 확 달라졌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부산·경남을 덮친 수해현장도 마찬가지다. 사태의 심각성을 먼저 파악한 이가 직권으로 물에 잠긴 지하차도 입구에 출입통제선 하나만 설치해 놔도 외할머니와 손자가 물에 잠긴 차안에서 그런 허망한 죽음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농로를 달리다가 폭우에 휩쓸린 창원 시내버스는 또 어떤가. 과연 누가 그 운전기사로 하여금 찻길도 아닌 그런 길로 들어서게 했을까. 살다보면 양일이 생각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자공이 공자에게 선비는 어떤 사람인가 물었다. 공자는 “양심을 지키며 사방에 사신으로 가서 임금의 명령을 욕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行己有恥使於四方不辱君命)”라고 말했다.

임금의 명령을 욕되지 않게 한다. 이는 공직자들이 꼭 새겨야 할 말 같다. 예나 지금이나 임금의 사신을 자처했던 자들이 가장 기본적인 자신의 양심을 지키지 못하고 매사를 대충대충, 얼렁뚱땅, 빨리빨리 한 결과 요즘 우리나라가 지붕이 새는 집이다. 비가 새고 있는 안방이다.

올 여름을 참 덥게 만들었던 ‘세월호’, ‘임 병장’, ‘윤 일병’, ‘싱크홀’. 그런데 8월이 다 가는 이 마당에 물난리로 또 14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잃지도 않고 말을 잃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봄부터 이번 여름 사이에 너무 많은 사람들을 잃고 할 말도 잃었다. 아, 가을! 비 새는 지붕부터 고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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