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98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98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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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1. 역사(歷史)의 얼굴
“또 맞혔다아!”

이번에도 정확히 산대에 가 꽂혔다. 눈이 밝은 소총수들은 목표물과의 거리에 따라 고각(高角, 올려본각)을 조정하는 막대를 받쳐 총통 앞쪽의 높이를 조정하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왜군이 쌓은 토성이 진주성보다도 오히려 더 높다는 말이 되겠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낮아진 성에서 높은 곳에 있는 적의 목표물을 올려다보는 양상이 되어, 소총수들의 시선과 지평선이 이루는 각도가 잘 조정되어야만 산대를 쳐부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신이 내린 무기 같은 현자총통의 놀라운 위력 앞에서 기세등등하던 왜군이 우왕좌왕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조선군 눈에 또렷이 잡혀들었다. 그 장면은 졸지에 불벼락을 맞고 혼비백산 흩어지는 개미 떼를 방불케 했다. 실로 통쾌하고 자신감을 주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한 번 더 발사한다!”

시민의 세 번째 명령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청동 포신의 현자총통에서 발사된 대포알이 앞의 대포알들에 질세라 적의 산대를 뚫었다.

신기(神技)에 가까운 사격술이었다. 급기야 산대를 만들던 왜군들이 겁을 집어먹고 황급히 물러가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수성군이 칼이며 창, 화살을 높이 치켜들고 함성을 질러댔다. 하늘을 찌르는 사기란 소리는 지금 그 순간을 위해서 생긴 말 같았다. 이제는 왜군이 어떤 무기로 공격해 와도 모조리 격파할 용기와 자신이 쑥쑥 솟아났다. 언제든지 와라, 이놈들아! 다음에는 더 맛있는 것을 먹여주마!

왜군이 회심의 미소를 품고 제작한 바퀴 달린 산대, 곧 윤전산대(輪轉山臺)는 그렇게 무너져 갔다. 촉석문 옆의 성가퀴 위로 꽂아 놓은 용대기를 비롯한 무수한 깃발들도 신이 난 듯 춤을 추는 것처럼 바람에 너울거렸다.

뿐만이 아니었다. 가장 흔한 형태의 여장(女牆)인 거기 ‘평(平)여장’과는 달리 계단 방식으로 축조한 서장대 쪽의 ‘층단(層段)여장’ 위에는, 성 안 숲에 사는 다람쥐 몇 마리가 여유롭게 올라앉아 무슨 나무 열매를 까먹고 있는 모습도 발견되었다. 그것은 이제 동물들도 왜군을 깔보고 있다는 증거라고, 수성군은 통쾌하게 웃었다.

잠시 휴전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군이 산같이 쌓아놓은 솔가지들이 마음에 걸렸다. 군관 윤사복이 모두를 둘러보며 물었다.

“놈들이 솔가지를 저렇게 많이 가져다놓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파평 윤씨인 그는 첨정 벼슬에 있다가 전쟁이 나자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에 입성한 인물로서, 훗날 영조 때 병조참의에 추증되기도 한다.

“그야 뻔한 속셈 아니겠소?”

이광악이 가소롭다는 듯 대답했다.

“성을 넘어오기 위한 술책이겠지요.”

땔감으로 쓰려고 꺾어서 말리는 저런 소나무 가지는 한번 불이 붙으면 활활 잘도 타오른다는 생각과 함께,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 거기 불을 놓고 싶은 충동이 이는 수성군이었다.

“그 앞에다가 대로 엮은 발을 막아놓은 것은요?”

이번에는 상주의 함창현감 강덕룡이 입을 뗐다. 본관(本貫)이 진주인 그는, 임진년 1년간 12회의 대소 전투에 참여하여 모두 승리를 거둔 공으로, 정3품 서반(西班) 무관에게 주는 절충장군에 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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