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00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00회)
  • 정원경
  • 승인 2014.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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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김동민 연재소설(200회)

14장 1. 역사(歷史)의 얼굴



시민이 피가 배일 정도로 입술을 꾹 깨물며,

“무슨 수든 찾아야지. 없으면 새로 만들어서라도…….”

“아, 대체 무슨 수로……?”

범 같은 장수들이 저마다 탈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현자총통으로 적의 산대를 까부수던 때의 기백은 찾으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이제 끝까지 오고 말았는가, 끝까지. 분위기는 숙연하다 못해 찬물을 끼얹힌 것 같았다. 성 안팎으로 까마귀 울음소리만 낭자했다. 놈들이 벌써 조선인 피 냄새를 맡았다는 것인가.

‘참으로 허무한 일이로다. 저놈들이 엮은 대발과 쌓아놓은 솔가지, 저따위 것들 때문에 철옹성 같은 이 성이 쑥대밭으로 변해야 한다는 말인가?’

왜적에게 짓밟혀 폐허로 화해버린 진주성이 자꾸만 눈앞에 떠올라 세차게 내젓던 시민의 머릿속에, 언젠가 조운과 함께 비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거닐던 남강변에서 보았던 쑥이 떠올랐다. 흙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볼 수 있는 게 쑥이라지만, 참 ‘쑥쑥’ 잘도 자라고 있었다.

“쑥의 종류는 한두 가지가 아니더군요. 참쑥, 덤불쑥, 산쑥, 물쑥, 황새쑥, …….”

그날, 평생을 두고 오로지 비차 제작에만 골몰하는 나머지 제대로 손질조차 하지 못한 조운의 쑥대머리는 왜 그리도 시민의 마음을 슬프고 아프게 만들었던가.

“저 쑥을 보니, 가장 흔한 것이 가장 귀하다는 말이 생각나는구려. 백성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고…….”

그런 말을 해주었더니 조운이 그만 몸 둘 곳을 몰라 했던 기억도 났다. 하지만 시민은 그로부터 150여 년이 흐른 후 바로 거기 남강변에서 벌어질 일은 꿈속에서라도 몰랐을 것이다.

그것은 영조 23년 정월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경상우병영에 속해 있던 귀동(貴同)과 득손(得孫)이란 두 관노(官奴)가 그곳 남강변에 쑥을 캐러 왔다. 그런데 그들은 강물 속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하였다.

“어, 저게 뭐야? 무슨 도장 같은데……?”

그들이 물에서 건져낸 것, 그것은 오래된 관인(官印)이었다. 그것은 곧 경상우병사에게 바쳐졌고, 거기에 전서(篆書)로 뚜렷이 남아 있는 글자의 획이 밝혀졌다. 한자의 5개 서체인 전, 예, 해, 행, 초서체 가운데 먼저 생긴 서체였다. 그 서체로 새겨져 있는 것은 놀랍게도 ‘경상우도병사절도사인(印)’이라는 글자였던 것이다. 또한 그 배면(背面)에도 ‘만력십년삼월일조래사월십일일위시행용’이라는 해서체가 그 획이 닳아 없어지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다.

“만력(萬曆) 10년이면 선조 15년, 그러니까 1582년이 되거늘, 그해 3월에 만들어 4월 11일까지 관인으로 사용했다는 얘기가 아니더냐?”

“저 계사년 진주성 전투 때 남강에 투신한 경상우병사 최경회가 지니고 있었던 그 관인이 틀림없사옵니다.”

“여봐라! 어서 장계를 올려 이 귀한 것을 상감께 바치도록 하라!”

진실로 역사(歷史)는 ‘거짓이 없고 무섭고도 두려운 얼굴’이었다. 시민이 수성장으로 있는 진주성을 도와주기 위한 외원군(外援軍)으로서, 군사 2천여를 거느리고 지금 성 서쪽 방면에 와 있는 전라우의병장 최경회 그 자신조차도, 그런 훗날의 일을 어찌 내다볼 수 있었으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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