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춰선 5일장의 하루 <함양 중앙시장>
시간이 멈춰선 5일장의 하루 <함양 중앙시장>
  • 최경인
  • 승인 2014.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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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손님과 함께 시장도 나이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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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중앙상설시장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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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이 장터에 모여 이야기꽃읖 피우고 있다.


재래시장은 지역주민과의 오랜 약속이다. 함양은 2일과 7일에 함양장, 5일과 10일에는 마천장과 안의장, 그리고 4일과 9일은서상장날이다. 사람들에게 5일장은 그저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장날에 맞춰 병원에도 가고 미장원도 간다. 아껴둔 쌈짓돈 얼마면 훌륭한 하루 놀이터가 된다. 먹을거리와 입을거리만을 위해 5일장에 들르지 않는다. 그저 장이 좋고, 오늘이 장날이기 때문이다.



◇5일장 서는 날이면 노점 100여개 늘어서

함양읍 용평리에 자리 잡은 함양중앙상설시장은 대지 1만5217㎡에 전체 건물면적은 1만8200㎡로 이곳에 점포 187개가 들어 서 있다.공식적으로 1983년 2월3일 형성된 함양중앙시장은 점포 187개를 97명의 상인이 운영한다. 여기에다 5일장이 서는 날이면 100여명이 노점을 형성해 지역에서 가장 큰 대규모 시장이 형성된다. 하루 1000여명, 5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5000여명이 찾는 지역의 중심상권이기도 한 함양중앙시장은 시장의 규모는 점점 축소되고 있지만 시장 곳곳에 묻어 있는 옛 정취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지리산 마천골·전북 남원에서도 찾아

인구 4만여명인 함양군의 대표 재래시장인 함양중앙상설시장은 누가 뭐래도 예나 지금이나 함양군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상설시장으로 바뀌긴 했지만, 2일과 7일이면 예전 5일장 모습대로 장터는 사람 사는 맛이 난다. 장이 서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 촌로들이 관내 곳곳에서 버스를 타고, 어떤 이는 오토바이를 타고 약속이나 한 듯 시장으로 몰려든다.

지리산 아래 마천골에서도, 덕유산 아래 서상 사람들도, 멀리 전북 남원시 인월면에서도 장을 찾는다. 장날 시장통은 어느새 전라도와 경상도의 사투리가 뒤섞여 다양한 화음을 만들어낸다. 하동 화개장터가 전남과 교류하며 유명해졌다면, 이곳 함양시장은 전북과 경남의 만남의 장이 마련되는 곳이다.

함양시장에는 여느 시골 재래시장과 마찬가지로 지역민들이 바리바리 싸들고 나온 농산품, 이들이 사가는 생필품 등이 어우러져 장이 펼쳐진다. 이곳에서는 특히 지리산과 덕유산의 청정 자연에서 생산된 ‘웰빙’ 특산물을 만나 볼 수 있다. 점포보다 난전이 더 풍성하다.



◇상인도 손님도 대부분 70~80대 촌로들

함양중앙상설시장은 오전 8시가 지나면 ‘성시(成市)’를 이룬다.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좌판이 펼쳐지고 갖가지 물건들이 순식간에 채워진다. 시장 곳곳에서 상인과 행인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진다.

상인도 손님도 대부분이 70~80대 촌로들이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흐르는 무덥고 습한 날씨 속에 그래도 그늘 아래 자리 잡은 좌판은 나름 명당자리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 자리한 좌판은 지열까지 더해지면서 싱싱한 채소들이 금방 시들어 버린다.

호박잎과 고구마 줄기를 팔기 위해 수동면에서 왔다는 송씨(78) 할머니. 길가 보도블록 바닥에 자리 잡고 새벽에 텃밭에서 수확한 싱싱한 채소들을 손질하며 혹시 손님이 오지 않을까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아침 7시, 첫차를 타고 시장에 도착했다는 할머니는 10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에도 개시를 못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직접 가꾼 싱싱한 채소들을 들고 온다. 많이 팔아봐야 만원도 남지 않지만 틈틈이 모은 돈을 가끔 찾아오는 손자들 용돈으로 요긴하게 사용한다.

난전을 뒤로하고 시장을 찾아 들어가니 한 점포에서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들린다. 막바지 여름을 식히기 위해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한 채 할머니 여남은 분이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소파와 평상, 앉을 자리가 모자라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은 할머니까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연신 웃음이 가시지 않는다. 차 시간이 남아서 여기서 기다린다는 할머니, 그냥 놀러 왔다는 할머니, 시아버지 제사장을 보고 잠깐 쉬고 있다는 할머니까지.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는 동안 노부부가 들어서며 “여기 이름난 한의원이 있다고 하던데…”라는 물음에 할머니들은 그들만이 알고 있는 지식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함양한의원’, ‘동의한의원’, ‘명인당한의원’ 등을 소개하며 친절하게 위치까지 알려준다. 동네 사랑방 같은 시장통의 점포는 그렇게 쉼터이자 놀이공간, 정보 공유의 장 역할까지 톡톡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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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이 오늘 얼마 벌었는지 돈을 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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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대 모자를 들어보이는 상인의 표정이 즐기기만 하다.
◇대나무제품 상회는 노부부의 ‘평생직장’

할머니들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가득한 점포 맞은편의 줄지어 선 난전 한쪽에서는 양씨(81) 할머니가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고구마 줄기를 손질하고 있다. 양 할머니는 이 자리를 30년 넘게 지키고 있다.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할머니가 취급하는 물건도 갖가지다. 채소와 나물류부터 싱싱한 오리알 등등 다양하다. 펼쳐 놓은 물건들 대부분을 이날 새벽에 준비했단다.

시장 가운데쯤에 들어서니 수북이 쌓인 죽제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여름을 시원하게 나게 해주는 대자리부터 채반, 소쿠리, 바구니, 도리깨, 예쁘게 꾸민 예단바구니까지. ‘대죽상회’라는 이름 그대로 모든 대나무 가공제품들을 펼쳐 놓고 있다.

이경생 할아버지의 죽제품 경력은 50년이 넘는다. 요즘 중국산이 시장을 잠식하고, 국산은 가격 면에서 수지가 맞지 않지만 하던 일이라 계속하고 있다. “우리 영감이 늙어 힘이 없을 때까지 만든다고 했으니 나는 만든 거 여기서 팔아야지 뭐…” 할머니는 ‘평생직장’을 이어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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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있다.


◇솔향기 풍기는 9월이면 ‘전국구 시장’

함양시장 주차장 인근 부동산중개소를 찾았다. “여기 시장을 둘러봐. 70~80대가 대부분이야. 간혹 젊은 축에 드는 이도 있지만…. 이들이 모두 죽고 나면 아마 시장에서 물건 파는 사람이 없을 걸.” 평생을 시장 상인들과 부대끼며 살아온 그에게서 씁쓸한 아쉬움이 남는다. 재래시장은 갈수록 늙어간다. 시장을 찾는 촌로들의 주름살만큼이나 빈 가게도 늘어간다.

그래도 더위가 조금 가시는 9월부터 함양시장은 상큼한 솔향기와 함께 외지인들이 하나둘 늘어갈 것이다. 함양 송이버섯을 만나기 위해서다. 지리산, 덕유산을 비롯한 인근 숲속에서 채취한 함양 송이는 솔향이 진하고 맛이 좋아 전국 최고 품질을 자랑한다. 송이철이 되면 난전에서도 송이를 판다. 전국에서 함양 송이를 찾아온다. 그래서 부지런하지 않으면 빈손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상큼한 솔향기와 함께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곳, 그곳이 바로 함양중앙시장이다.

최경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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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을 맞아 장터에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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