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01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01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9.0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4장 2. 불타는 전장(戰場)
경상도에서 올라온 관인을 살펴본 영조의 용안이 사뭇 떨렸다.

“옛날 도장을 가져다 보니, 이는 바로 그가 바치는 듯하도다. 또한 도장 위에 새겨져 있는 연월(年月)을 보자니, 짐의 마음이 갑절로 숙연해지는 것을!”

영조는 즉시 하교하기를,

“창렬사(彰烈祠)에 치제(致祭)하도록 할지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왕은 이조(吏曹)에 하명하여 최경회 후손을 등용토록 하였으며, 인갑(印匣)을 만들어 관인과 함께 경상우병영에 내려보냈다. 특히 인갑 위에 새기게 한, 최경회의 충절을 기리는 명(銘)은 왕이 친히 지은 것이었다.

그러한 사연을 간직하고 유유히 흘러갈 강물을 보듬은 남강변. 그러나 지금 그곳은 왜군이 성을 함락하기 위해 엮은 대발과 쌓아놓은 솔가지로 인해 숨 막힐 듯한 긴장과 침묵이 지배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 김시민 장군마저 어떻게 할 방도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수성은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 되지 않을까?’

‘어쩌면 애당초 저 많은 왜적을 상대로 성을 지키겠다는 결심부터가 한없이 어리석고 잘못된 처사였는지도 모른다.’

장수들은 점점 전의(戰意)를 상실해갔다. 지금까지 버텨온 것만도 다행스럽고 대견한 전공(戰功)을 세웠다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그만큼 모두가 지치고 힘든 탓이리라.

그런데 그런 침통하고 무거운 공기 속에서였다. 한참이나 혼자서 주먹을 거머쥐거나 이맛살까지 찌푸려가며 궁리하던 시민의 두 눈이 반짝 빛나더니 홀연 이렇게 소리쳤다.

“아, 좋은 수가 있도다!”

장수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시민이 다시 기력을 되찾은 목소리로 말했다.

“화약을 종이에 싸서, 섶을 묶은 속에다 넣도록 하시오.”

“섶을 묶은 속에다, 종이에 싼 화약을……?”

그렇게 되뇌는 장수들을 향해 시민이 근엄한 낯빛으로,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시겠소?”

곰곰 헤아려보던 모든 장수들 얼굴이 일시에 환해졌다.

“오호, 그런 수가 있었군요? 정말 대단한 생각을 해내셨습니다. 하하.”

“어찌 그렇게 기발한 발상을……?”

“귀신도 울고 갈 것입니다.”

당장 성 위에 병사들을 모았다. 그러고는 미리 준비한 화약뭉치를 일제히 성 밖으로 집어던지게 했다.

“성공입니다, 장군! 저 왜놈들 꼴 좀 보십시오.”

“참으로, 참으로 통쾌합니다.”

수성군은 온 세상이 떠나가라 환호성을 질렀다. 왜군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렇게 애써 이루어놓은 대발이며 솔가지가 순식간에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조선군을 호락호락하게 여긴 것은 아니지만 저런 식으로 대응해 올 줄이야.

‘보시오, 조운. 나는 이렇게 끝까지 성을 지켜낼 것이니, 그대도 그대가 하는 그 일을 반드시 이루길 바라겠소.’

시민의 눈에는 불타는 그 나무들 위로, 조운과 그가 지금 그 순간에도 한창 제작하고 있을 비차의 재료인 대나무와 소나무가 겹쳐 보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