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삶이란
자연스러운 삶이란
  • 경남일보
  • 승인 2014.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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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윤 (창원 박달나무한의원장)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의원을 찾아 약을 지어가는 환자가 있다. 이른바 보약 매니아인 이 환자는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아가씨이다. 명랑하고 쾌활한 성격 탓인지 자주 내원하시는 환자분은 아니지만 오실 때마다 낯설지 않은 느낌이다. 작년 가을 처음 내원한 이 환자분은 또래의 환자분과는 조금 달랐다. 보통 젊은 환자들이 보약을 지으러 올 때는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오는 경우가 많지만 이 분은 스스로 몸이 너무 지친다고 하시며 상담을 청했다. 실제로도 가장 체력적으로 왕성해야 할 나이에 이 정도로 기력이 떨어진다면 어딘가에 문제가 있기는 하다. 진단결과 가장 큰 문제점은 생활습관에 있었다. 과자를 좋아하는 식습관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주야간 교대 근무로 인해 밤낮이 바뀐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었다. 교대 근무를 하기 전 누구보다 훌륭했다는 체력은 불과 몇 년 사이에 눈에 띄게 줄었던 것이다. 적절한 처방을 통해 피로감이 어느 정도 개선되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치료는 교대근무를 멈추는 것이라는 사실은 나도 알고 환자도 아는 사실이다.

실제로 한의원을 찾는 많은 환자들은 직업적인 이유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야간근무를 해야만 하는 환경에 놓여있다. 시차를 넘나들어야 하는 항공기승무원, 야간에도 병동을 지켜야하는 병원근무 간호사들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직업군에 종사하는 분들의 상당수가 건강상의 어려움을 호소하게 된다. 자연스러운 일 주기에 따라 직업활동을 할 수 없는 특수직업의 비애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인간은 멜라토닌 등을 비롯한 호르몬 조절을 통해 내부의 생체시계를 외부와 일치시키면서 살아간다. 시간의 흐름, 태양의 지고 뜸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조건에 인간이 맞추면서 살아야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이 한의학의 기본적인 사고체계이다. 한의학 최고의 원전인 황제내경(黃帝內徑)의 사기조신대론(四氣調神大論)편에는 각 계절에 맞는 양생법을 서술하고 있다. 재밌는 점은 각 계절마다 잠이 들어야 하는 시간, 깨어나야 하는 시간을 각각 다르게 제시하고 있는데 모두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취침, 기상시간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합일 사상을 근본으로 하는 도가적 색체가 강한 고대 한의학의 특성이 드러난 양생법이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지 수면 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흐름에 맞는 생활방식이 건강에 유리하다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현대인의 생활조건이 그러한 삶의 방식을 용인하기에는 너무나 팍팍하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특히나 일몰 후에는 가정으로 복귀하여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인 유럽과는 달리 늦게까지 일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한국사회의 특성은 우리의 건강을 더욱 극한 상황에 내몰리게 한다.

건강을 희생하면서까지 일을 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에게 조금 측은한 감정마저 드는 것이 사실이다. 2010년 서울 행정법원은 주야간 교대근무로 발생한 수면장애에 대해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사회적 필요에 의해 건강을 희생해야만 하는 근로자에 대한 법적인 배려라고 볼 수 있으며 환영할 만한 판결이라 생각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자연적인 흐름을 거스를 수밖에 없는 근무환경에 놓인 근로자에게 의료적 지원 등의 여러 가지 배려가 필요하다는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재윤 (창원 박달나무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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