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04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04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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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2. 불타는 전장(戰場)
그러나 조선군은 그것을 쳐부수었다. 더욱이 왜군의 그 가공할 무기를 물리친 것은 최신식 무기도, 무슨 각별한 병기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이었나? 바로 자루가 긴 도끼와 낫이었다. 천지신명도 감탄할 노릇이었다.

“조선 도끼와 낫에는 도깨비 혼이 붙어 조화를 부리는 모양이야.”

왜군은 진주성의 탁월한 전술에 혀를 내둘렀다. 그런 구식무기에 무참히 당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저 성에 있는 놈들은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귀신이 만든 성이지 뭐야.”

왜군을 전율케 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민은 가장 원시적이고 손쉬운 방법으로 가장 효율적인 방어력을 구사할 줄 아는 장수였다.

“사루마다 하나 걸치고 추울 텐데, 따뜻하게 목욕이나 시켜주도록 하라.”

성가퀴 안에 가마솥을 많이 걸어놓고 물을 끓였다. 그리하여 성벽을 타고 오르는 왜군은 펄펄 끓인 그 물세례를 받고 얼굴 살갗이 벗겨지고 손이 빨갛게 덴 채 아래로 굴러 내렸다. 궁둥이가 빨간 원숭이 무리 같았다. 특히 온몸에 불이 붙은 채 어쩔 줄 몰라 이리저리 뛰거나 땅바닥을 구르는 모습들은 영락없이 재주 부리는 원숭이였다. 가마솥이 그런 훌륭한 병장기로 둔갑한 것이다.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참아라. 내가 너희를 곧 전쟁의 공포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마.”

시민은 부하를 아끼는 마음이 극진하고 위장전술에도 뛰어났다. 군사들로 하여금 낮 동안에는 성가퀴 안에 엎드려 있게 했다. 일어서서 성 밖을 내다보다가 왜군들이 가장 자랑삼는 조총에 맞을 위험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한편으로 휴식을 취하는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질수록 불리한 쪽은 성 안에 갇혀 있는 조선군일 것이라는 위기의식은 시민을 끝없이 괴롭혔다.

‘과연 내가 이광악의 의견을 따른 것이 잘한 일일까?’

군사를 진두지휘하면서도 내내 시민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이었다. 얼마 전 그 일을 떠올리면 혹시 수성장의 그릇된 판단 하나로 수많은 조선 백성이 생명을 잃게 되지 않을까 가슴이 더없이 답답해져 오곤 하였다.

“아무래도 안 되겠소. 성을 온전하게 지키기는 어려울 듯하니…….”

시민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곤양군수 이광악은,

“지금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오니까?”

하였지만 벌써 시민의 마음을 읽었다는 빛이었다. 시민은 아주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단호한 어투로,

“적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수문(水門)을 열어 노약자들을 성에서 내보내야 할 것 같소이다.”

“그것은 아니 될 처사입니다. 만약 그같이 하게 되면…….”

이번에는 시민이 이광악의 말을 끊었다.

“늙고 병든 백성들이 개죽음을 당하게 할 수는 없소.”

하지만 이광악은 한 치도 물러설 기색이 아니었다.

“그러면 크게 변하게 될 군사들 마음은 어떡하고요?”

점점 물의 양이 줄어들고 있는 성내 우물처럼 시민의 입 속이 말라붙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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