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05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05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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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2. 불타는 전장(戰場)
“나중에는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 지경에 이를지도 모르는데…….”

이광악은 완강한 자세를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고,

“그때는 그때 일이고, 지금은 아니라고 봅니다.”

시민은 주먹으로 가슴팍을 치며 말했다.

“수성장은 이 시민이오. 알겠소?”

그러자 이광악 또한 왜군이 가장 겁내는 허리춤에 찬 그의 장검에 손을 가져가며,

“이 사람을 믿고 여기까지 따라온 나의 휘하 병사들 목숨도 소중하오이다.”

“누가 그것을 모르오?”

두 사람 모두 음색이 붉었다. 수성전을 펼치면서 아직 한 번도 의견 충돌을 일으킨 적이 없던 그들이었다. 오히려 지나친 의기투합이 우려될 정도였다.

“아신다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홀연 그들 사이에 아주 위험한 기운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때까지 그 설전을 듣고 있던 장수들이 그 분위기가 거북한 듯 총지휘소인 거기 촉석루에서 나가기 시작했다. 왜군과 접전을 펼칠 때는 그렇게 기운 넘쳐 보이던 장수의 어깨들이 하나같이 축 처져 보였다.

‘어쩔 수 없겠구나. 이광악이 우려하는 대로라면 장수들이라고 다르지 않겠지.’

그리하여 결국 수문 열기를 포기한 시민이었다. 하지만 그 일로 말미암아 시민은 더욱 수성에 달라붙었고 이광악을 다시 보게 되었다.

‘혹시라도 내가 수성장을 맡지 못할 경우가 생기면, 지금 여기 있는 장수들 가운데서 이광악을 따라갈 만한 적임자가 없을 게야.’

시민의 전술 중에 또 매우 기발하고 놀라운 게 있었다. 바로 꼭두각시놀음에 나오는, 사람의 형상으로 만든 인형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이들이 그냥 가지고 노는 장난감으로서의 인형이 아니라 최고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독특한 창작물이었다.

“짚으로 인형을 만들되, 활시위를 잡아당기고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라.”

장졸들이 하나같이 감탄해 마지않았다.

“아, 그런 놀라운 착상을 하시다니?”

수성군 중에는 농사를 짓다가 군인을 자원해 온 이들도 많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짚을 아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솜씨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만든 인형은 멀리서 보면 누구 눈에도 영락없이 활을 쏘고 있는 궁수(弓手)로 보일 것이었다.

시민은 군사들로 하여금 그렇게 만들어진 인형을 성가퀴 위로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게 했다. 왜군은 수성군이 머리를 성가퀴 위로 들어 올릴 때를 기다려 탄알과 화살을 날렸다. 허수아비 몸에 탄알과 화살이 박혔다. 시민은 그것들을 뽑아 아군의 무기로 활용하였다. 적에게 포위된 성 안에서 무기 확보는 식량 비축과 함께 필수적이었다.

“화살 한 개라도 헛되이 날리지 말라.”

새들도 깃털을 함부로 흩날리지 않는 듯했다.

“적이 성 가까이 오면 물을 붓고 돌을 던져라.”

왜군은 뜨거운 물과 단단한 돌에 질려버릴 판이었다. 진주목사 김시민의 이름은 왜군에게 널리 알려졌고 그만큼 시민의 목숨은 위험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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