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06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06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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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3. 시험비행(飛行)
한편, 이곳은 비봉산 서편 자락의 가마못 안쪽 분지.

드디어 비차 제작장인 거기 공터에서는 조선군은 물론 교활한 왜군도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전대미문의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 꼭 따오기 같아요.”

조운과 정평구가 완성시켜놓은 비차를 본 둘님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따옥따옥’ 하고 우는 따오기 말예요!”

마치 따오기 노래를 부르는 듯한 둘님의 밝고 명랑한 모습을 보고 조운은 눈을 끔벅거렸다. 그녀의 뒤에서 언제나 비치던 광녀 그림자가 지금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봄날 보리밭 위에서 지저귀는 종달새 같은 지난날의 둘님을 다시 보는 듯했다.

“풀무가 제 임무를 잘해 주어야 할 텐데…….”

정평구가 비차 동체에 장착된 풀무장치를 보며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정확히 말해 풀무는 아니었지만 정평구는 그것을 풀무라고 불렀다. 세상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이었고, 따라서 아직은 마땅히 부를 이름도 없었지만, 말티고개 근처 대장간 풀무를 보고 결정적으로 제작한 장치였기에 그런 이름을 붙이는 것도 괜찮을 만 했다.

조운도 정평구와 똑같은 심정이었다.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풀무의 원리를 이용해 비차를 날게 할 추진장치를 만들 것인가가 최대 관건이기도 했다. 비행(飛行)의 성패가 좌우되는 만큼 그것은 사람의 애를 바짝바짝 태웠다.

‘뒤돌아보면 사람이 할 수 있는 별의별 궁리를 다 했어. 정평구 저 사람이 오지 않았다면 나 혼자서는 도저히 불가능할 시도까지도…….’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마를 것 같은 오랜 연구 끝에 그들이 또 착안한 것이 저 ‘쥐불놀이’였다. 정월 첫 쥐날[上子日]이나 열나흗날이나 대보름날 저녁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논둑이나 밭둑에 불을 붙이고 돌아다니며 노는 놀이. ‘논두렁 태우기’, 혹은 ‘쥐불놓기’라고도 하는 우리의 그 오랜 민속놀이가 비차 제작에 크나큰 도움을 주게 될 줄이야.

특히 밤에 아이들이 기다란 막대기나 줄에 불을 달고 빙빙 돌리며 놀던 광경을 수백 수천 번 생각했다. 줄을 빠르게 빙빙 돌리면 줄 끝에 매달린 깡통 속 불이 쏟아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그냥 넘기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놀이를 활용하여 일단은 성공할 수 있었으니, 정말 지금 와서 돌아봐도 어떻게 그런 놀라운 원리를 동원했을까 자신들 스스로도 대견스럽고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정월 대보름날 달집에 불이 붙는 것을 신호로 밭둑에 놓던 불을 가장 좋아했지.’

그러나 비차의 추진장치는 누가 뭐래도, 대장간 사람들이 풀무를 사용하는 방법에서 터득한 바가 제일 컸다. 그래 누가 그 원리에 대해 물으면, 대장간에 가서 풀무질하는 것을 잘 보면 알 수 있을 거라고 답할 것이었다. 비차에 장착된 저것은 ‘이동 풀무’라고 보면 된다고. ‘하늘을 나는 풀무’라고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실패하여 추락, 불이 붙게 되면, 사람도, 비차도 쥐불놀이에서 태운 잡초의 재처럼 그렇게 형체도 없이 스러져 버리고 말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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