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210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210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9.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4장 3. 시험비행(飛行)
비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봉산이 조선 여인네 치맛자락같이 넉넉한 산자락을 펼쳐 어서 내게 와서 안기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자, 이제 다 올라온 것 같소. 가슴이 탁 트이는 듯합니다. 그들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저 아래로 광녀가 조운에게 줄 메뚜기를 잡았다는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조운의 눈에 금방이라도 그곳 어딘가에 광녀가 나타나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비차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보일 것만 같았다.

“여기까지 오느라 너도 고생 많았다. 하지만 진짜 고생은 이제부터란다.”

정평구가 비차를 애무하듯 만지며 하는 그 소리에, 조운은 자기 속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난다 난다 비, 비차…….

지금부터 시작이다! 날자, 비차야! 이윽고 그런 함성과 함께 그들은 비차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비차의 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풀무장치가 가동되는 가운데, 날개를 움직이는 줄과 연결된 장치를 움직여 양쪽 날개가 위아래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었다. 물론 동체의 가죽주머니 아래쪽에 뚫려 있는 구멍을 통해 압축공기도 밑으로 분출되고 있었다.

실로 숨막히는 순간이었다. 서쪽 하늘로 향하던 해도 걸음을 멈추고 내려다보는 듯했다. 비봉산도 허리를 굽혀 지켜보는 것 같았다. 나무도 풀도, 거기 있는 벌레들마저도 그 움직임을 딱 멈추는 느낌이었다.

얼마나 비차의 배를 두드렸을까? 드디어 바람이 일어났고, 그리고, 그리고 마침내 기적처럼, 비차는 아주 조금씩 조금씩 몸을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마치 살아 있는 새, 따오기나 고니인 양. 바닷속을 헤엄치는 가오리처럼. 거인이 천년 동안 깊은 잠에 빠졌다가 비로소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켜듯이.

“아, 뜨, 뜹니다!”

“가, 가라앉지 말아야 할 텐데……?”

“안 그렇습니다! 더, 더 자꾸 날아오르고 있어요! 보세요! 보십시오!”

“정말! 오! 서, 성공이오!”

그랬다. 그대로 내려앉아버리지 않고 비차는 계속 몸을 솟구치고 있었다. 조운은 꿈만 같았다. 하늘 높이 띄운 커다란 연 위에 올라앉아 있던 꿈이 현실의 꿈이 되었다.

나는 수레, 비차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조선 최초의 비행기, 아니 세계 최초의…….

그들은 흥분과 감격에 싸여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마침내 이루어낸 것이다. 해내었다. 비차는 무명천 날개를 움직여 능선을 거슬러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가 북쪽 산자락 밑 들판에 무사히 착륙하였다. 골격의 전방과 후방에 설치한 지지대는 착륙하는 데 따르는 충격을 흡수하여 사뿐히 내려앉게 했다.

비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얼싸안고 떨어질 줄 몰랐다. 그들 눈에는 하나같이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노을이 그 눈물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비차도 한 마리 붉은 따오기나 고니, 가오리같이 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용감한 전사(戰士)같이 비치기도 했다.

첫 번째 비행은 성공한 셈이었다. 그때 멀리서 가슴을 졸여가며 지켜보고 있던 둘님이 엎어질 듯 꼬꾸라질 듯 마구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도 기쁨으로 터질 것같이 보였다. 조운은 들었다, 그와 광녀가 함께 부르던 저 ‘비차의 노래’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