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12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12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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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 1. 둘 그리고 넷
함께 살자는 산적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끝까지 조운 자신과 동행해준 상돌의 우정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산적이 되면 백정이라는 조선 최하위의 신분으로 온갖 멸시와 천대 속에 살아가지 않아도 될 것을. 어쩌면 상돌은 정백으로부터 산적 두목 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 당시 정백과 그의 수하들이 보이던 언동을 본다면.

‘그런 고마운 상돌을 다시 이렇게 위험한 일에 끌어들이는 게 과연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도리일까?’

그런 회의도 일었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마음을 다잡으며,

“지금 남강 건너 망진산 아래 섭천이라는 백정들 거주지에 살고 있는데, 그 사람이라면 믿어도 될 것 같습니다.”

“백정이라고 했소?”

정평구는 크게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언젠가 조운에게서 광녀 도원 처녀에 대해 들었던 그때만큼이나 경악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럼 그 노래를 그 미친 처녀가 지었다는 게요?”

그날, 저 ‘비차의 노래’를 들려주자 그는 좀체 못 미더워하는 빛이었다.

“그 처녀 혼자는 아니고요, 저하고 둘이서…….”

그러자 정평구는 조운을 꼭 미친 사람 대하듯 하며,

“강형이 미친 여자하고……? 혹시 강형도 미……?”

조운은 그만 할 말을 잃었다. 그것은 누가 들어도 이해되지 않을 소리였다. 그때부터 정평구는 죽자꾸나하고 달라붙던 일손을 놓아버린 채 조운을 멀거니 바라보기만 했다. 저런 자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공동작업을 포기하고 돌아가야겠다고, 내심 결심하는 빛이 역력했다. 조운은 그가 금방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휑하니 등을 돌려세우고 말 것만 같아 그야말로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리하여 만약 그때 광녀가 나타나 그런 장면을 보이지 않았다면, 어쩌면, 아니 분명히, 정평구는 짐을 싸들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을 것이다.

“어? 저, 저기 웬 여자가……!”

어쨌든 그런 아슬아슬한 순간에 정평구가 놀란 듯 말했다. 조운은 반사적으로 정평구의 눈이 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 분지로 통하는 구부러진 길목 저편에 파수꾼처럼 우뚝 서 있는 커다란 팽나무 밑을 막 지나 이쪽으로 오고 있는 광녀가 보였다.

그런데 조운의 정신이 반짝 든 것은 여느 때와는 다른 광녀의 행동 때문이었다. 그녀는 조운이 혼자 있을 때만 접근해 왔고 다른 사람이 옆에 있으면(심지어 둘님까지도) 멀리서 언저리를 맴돌 뿐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그날은 아랑곳하지 않고 회색 저고리와 검정 치마를 휘날리며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저 뒤쪽 산등성이에서 춤을 추고 있던 미쳤다는 그 처녀 맞지요?”

정평구는 북쪽 능선 위에서 보았던 광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조운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며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광녀를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혹시라도 무방비 상태로 있는 정평구에게 갑자기 달려들어 해코지라도 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미친 사람은 힘이 세다더니, 둘님의 머리채를 단숨에 낚아채 땅바닥에 패대기쳤던 광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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