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213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213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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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 1. 둘 그리고 넷
이윽고 두 사람 앞에 와 선 광녀는 연신 가쁜 숨부터 몰아쉬었다. 어머니가 새로 달아주었는지 저고리 옷고름이 잘 여며져 있어 조운은 그나마 안도했다.

광녀는 정평구는 안중에도 없는 듯 조운만 한참 가만히 바라보았는데, 그 눈길이 어떤 면에서는 정신이 온전한 사람보다도 깊고 그윽하여 조운은 또 다른 면에서 허둥거려야 했다. 두고 보면 볼수록 알 수 없는 여자였다. 그런데 정평구가 조운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그 찰나였다. 홀연 광녀가 비차 쪽으로 홱 몸을 틀더니만 또다시 예의 그 언동을 해보이기 시작한 것은.

“난다 난다 비, 비차. 진주성에 가보자.”

춤사위와 더불어 흘러나오는 노랫소리. 그러자 그때까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던 비차가 얼핏 몸을 움직이는 것같이 보였다.

“비차 비차 비차다. 진주성에 가보자.”

비록 간단하고 쉬운 노랫말(그걸 노래라고 해도 좋을지 조운은 아직도 판단이 서지를 않았다)이긴 하지만, 정신이 온전치 못한 처녀가 한마디도 틀리지 않고 그렇게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한결같은 몸놀림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런데 그야말로 조운을 엄청난 경악과 혼란으로 몰아넣은 것은 돌변한 정평구의 모습이었다. 정신질환도 일종의 돌림병일까? 정평구의 몸에 광녀의 광기가 고스란히 옮아붙은 듯, 광녀가 하는 짓을 정평구가 그대로 따라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에, 정평구까지도! 조운이 그 자신의 정신까지도 의심한 것은, 그 순간에는 비차도 광녀와 정평구와 어울려 춤추고 노래하는 것처럼 비쳐들었던 것이다. 그래, 모두가 하나였다. 그리하여 그때 그곳에서 조운은 ‘이방인(異邦人)’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조운이 그날의 낯선 기억의 틈바구니에서 풀려난 것은, 문득 귀를 때리는 정평구의 이런 소리 때문이었다.

“하긴 섬나라 오랑캐나 중국 떼놈이라도 필요하다면…….”

지금은 그런 신분 따위를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으리라. 정평구는 마치 거기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그러면 한 사람만 더 찾으면 되겠군.”

“그래도 한 사람 더…….”

조운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랫동안 비차 하나만을 벗 삼아 살아온 그였기에, 그 비밀스럽고도 중차대한 일에 가담시킬 사람을 얼른 더 떠올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나이 많은 양가 부모에게 맡길 수도 없었다. 그들은 비차가 조금만 날아올라도 당장 심한 어지럼증을 느껴 굴러 내릴지도 모르고, 자칫 심장 발작 증세를 보여 한 순간에 목숨을 잃을 위험이 너무나 컸다. 정평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더 없는 것이오?”

조운의 고개가 절로 수그러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잠자코 옆에서 듣고 있던 둘님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저도 같이 타면 안 될까요?”

순간, 조운과 정평구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둘님이 또 입을 열려는데 조운이 큰일 날 소리란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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