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16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16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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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 2. 칼춤, 그 붉은 마음
인간들이 생사를 다투는 때에도 시간은 수초 사이를 오가는 물고기처럼 무심히 인간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이날도 밤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어둠은 공수(攻守) 모두에게 힘들었다. 왜군은 무식할 정도로 끈질겼다. 그렇게 당했음에도 대나무로 엮은 발을 이용해 야귀(夜鬼)같이 서서히 접근했다. 어디서 파왔는지 흙을 점점 높이 쌓았다.

두 곳에 있는 산대는 4층으로 얽어매었다. 그 전면에는 판자를 매달아 수성군의 화살과 돌을 막으면서 조총을 쏘는 곳으로 삼았다. 나름대로 지형지물을 잘 활용했다. 그들도 이곳 지리에 점점 밝아간다는 나쁜 징조였다.

이경 무렵이었다. 고성 임시현령 조응도가 진주복병장 정유경 등과 더불어 군사 500명을 거느리고 왔다. 훗날 거제 기문포해전에서 맹활약을 펼치지만 정유재란 때 전사하고 마는 조응도였다. 외원군은 저마다 십자(十字) 횃불을 들고 남강 밖 진현 위에 늘어서서 뿔피리(날라리)를 불었다.

“야아! 구원병이 왔다아!”

“북을 쳐라! 큰종을 울려라! 날라리를 불어라!”

성 안팎에서 호응하는 조선군 사기는 밤하늘에 뜬 별도 떨어뜨릴 만하였다. 불어오던 강바람도 흠칫 도로 몸을 돌려세우는 듯했다.

하지만 더 큰 난장판이 벌어진 곳은 적진이었다. 왜군은 하도 놀라고 두려운 나머지 함부로 날뛰며 마구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급히 막사를 불태웠다. 뿐만 아니라 촉석루 건너편‘섭천 소’가 웃을 소동도 벌였다. 그들은 복병을 나눠 보내 강변을 막아 구원병이 오는 길을 끊느라 야단법석을 떨었던 것이다. 큰 손실을 입은 왜군 진지 위로 별똥별이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산을 넘으면 또 산이었다. 왜군과의 전투가 치열해짐에 따라 조선군이 보유하고 있던 궁시(弓矢)가 크게 소모되었다. 병기 부족은 수성군에게 절체절명의 위기감을 갖다 안겼다. 전세가 역전될 기미마저 엿보였다. 세찬 바람도 성 쪽으로만 불어와 성벽 위에 세워놓은 기치(旗幟)도 뒤로 펄럭이는 게 후퇴하려는 것같이 보였다.

‘전쟁터에서 군사들 사기란 것은 한 번 꺾이기 시작하면 다시 세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늘 어쩌면 좋단 말인가?’

긴 고민을 거듭하던 시민은 연락병을 뽑아 야간에 몰래 성 밖으로 내보냈다. 쥐도 눈치 채지 못했을 밀명을 받은 그들은 감사 김성일에게로 곧장 달려갔다.

지난날 문정왕후가 승려 보우의 말을 듣고 희릉(禧陵)을 옮기려고 했을 때였다. 당시 유생의 신분이었던 김성일은 그것을 반대하는 상소문을 지어 올리기도 했다. 또한 그는 통신부사로 대마도에 머문 적이 있는데, 그때 그를 영접한 왜승 겐쇼[玄蘇]와 주고받은 시를 적은 시비(詩碑)가, 오늘날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 이즈하라의 서산사(西山寺)에 세워져 있다고 한다.

“역시 김시민이다. 용케 버텨주고 있구나!”

저간의 전투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은 김성일은 치하부터 한 후,

“무기가 모자랄 수밖에 없겠지. 이를 어쩐다?”

“더 이상 버티는 건 무리일 것 같습니다.”

연락병이 다급한 목소리로 독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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