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25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25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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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 3. 하늘보다 높은 성(城)
전 현감 박광전, 능성현령 김익복, 진사 문위세 등과 보성에서 의병을 일으킨 임계영. 순천에 이르러 장윤을 부장으로 삼고, 남원에 다다르기까지 1천여 명을 모집하여 전라좌의병장이 된 그는, 최경회와 더불어 거창, 합천, 장수, 성주, 개령 등지에서 왜군을 격퇴하였다.

그런 임계영이 훗날 제2차 진주성전투를 맞았을 때였다. 그는 부장 장윤더러 정예군 300을 이끌고 먼저 성 안으로 들어가게 하고, 자신은 성 밖에서 무기와 군량을 대주며 기회를 엿보았다. 그런데 왜군이 성을 포위해 버린 바람에 그는 성에 들어갈 수가 없었고, 결국 성이 함락되면서 장윤은 전사하고 말았던 것으로, 그 일은 두고두고 그의 가슴에 한이 되어 사라질 줄 몰랐다.

왜군은 하루 종일 포와 화살을 쏘아댔다. 무기가 많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 수성군에게 전쟁공포증을 주려는 의도 같기도 했다. 실제로 몇 시간을 계속해서 들리는 포 소리는 사람을 미쳐나게 할 만 했다. 시민은 군사들이 그 소리에 열을 받거나 질리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다.

시간이 흐를수록 왜군도 초조하고 힘이 드는 듯했다. 흙을 져서 날라 토산대 쌓는 일을 전보다 더욱 급히 서둘렀다. 그러고는 산대에 올라가 철환을 무수히 날렸다. 성 안에서는 현자총통으로 대응했다. 대포알이 세 번이나 대로 엮은 발(죽편)을 뚫고 나가고 또 목판을 절단 냈다. 대단한 위력이었다. 왜군 조총은 조선군 현자총통 앞에서는 맥을 못 췄다. 조선군 주력무기인 화살도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조선놈들아, 이리 나와! 내 오줌 맛 좀 보여줄까?”

산대에 올라 유난히 마구 설쳐대는 왜군 하나가 있었다. 공성군에게는 사기를 높여주고 수성군에게는 큰 공포심을 주는 자였다. 무엇보다 이쪽을 깔보는 짓거리가 가증스러웠다. 시민은 활솜씨가 뛰어난 궁수(弓手)를 불렀다.

“저 자를 처치할 수 있겠느냐?”

팔뚝이 남들보다 배나 되게 굵은 궁수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그 왜군과의 거리를 가늠해 보더니 대답했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장군.”

“네 어깨가 무겁다.”

“장군 마음을 가볍게 해드리겠습니다.”

궁수는 심호흡을 한 후 시위에 화살 한 대를 얹고는 천천히 표적물을 겨냥했다. 그 왜군은 자기를 과녁 삼은 화살을 모르고 여전히 천방지축 날뛰었다. 적과 대치한 상황에서 그렇게 대범한 것으로 미뤄보아, 그는 백전노장이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였다.

‘씨-잉.’ 마침내 화살이 시위를 떠났다. 그리고 다음 순간, 성 안에서는‘와아!’하는 환호성이 터졌다. 화살은 정확하게 그자의 가슴에 가 박혔다. 그는 산대에서 사정없이 아래로 굴러 내렸다. 화살이 가슴 한복판을 관통하여 즉사한 것이다.

왜군 진영에서 아주 놀라고 두려워하는 공기가 성 안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영웅이 된 그 궁수는 새로 화살 하나를 더 재었다. 또 산대에 오르는 놈에게 먹일 참이었다. 그런데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왜군은 다시는 누구도 감히 산대에 오르지를 못했다. 왜군 진지 위의 하늘은 그렇게 높아 보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높아 보이는 게 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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