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27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27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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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1. 추락 후에 오는 것
비봉산 뒷자락으로 갔다.

조선 여인네 치마폭을 넓게 펼쳐놓은 듯한 지형이었다. 조금 전까지 아주 맑던 하늘이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지만 바람기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아 비행하기에는 별 무리가 없을 듯한 날씨였다.

“자, 각자 정해놓은 자리에…….”

거기 최연장자인 정평구가 자연스럽게 모두를 통솔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사실 나이를 따지지 않더라도 비차에 대해 가장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그가 선두 지휘하는 게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조심, 조심…….”

비차 앞자리에 조운과 정평구가 앉고, 뒷자리에 둘님과 상돌이 앉았다. 이제 네 개인 모든 좌석이 꽉 찬 셈이었다. 그때 그들도 함께하고 싶다는 듯 비차를 향해 날아오던 멧새 두 마리가 방향을 바꾸더니, 비차 재료들을 쌓아둔 근처에 서 있는 오리나무 가지 끝에 가서 앉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깨에 너무 힘을 주지 말고 자연스럽게…….”

정평구는 둘님과 상돌에게 줄과 연결된 기계장치를 움직일 것을 주문하고, 그 자신도 연줄을 감아놓은 얼레를 놀리듯 했다. 그리하여 이번에도 충청도 노성 땅 윤달규가 말하던, 소위 비차의 배를 두드리자 바람이 일었고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어머나!”

“아! 이럴 수가?”

둘님은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고, 상돌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엄청난 현실 앞에 그저 경악하고 감탄할 뿐이었다. 두 번째로 하늘을 나는 조운과 정평구는, 뒤쪽 좌석에 탄 두 사람보다는 덜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흥분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법을 모르는 사람보다 법을 아는 사람이 법을 더 무서워하는 법이라고, 비차에 대해 더 잘 알기에 그들 가슴이 더욱 쪼그라드는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비차가 땅을 벗어나 하늘로 높이 날아올라 마치 매처럼 공중을 선회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대성공이었다. 비차는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악령의 저주와 시샘이 내려질 줄이야.

그것은 조운과 정평구가 아찔한 현기증을 참고 저 아래 들판을 내려다보며 이제 서서히 비행 고도를 낮추어야겠다고 작정했을 때였다. 어디서 불어오는 것일까? 갑자기 매복한 군사가 급습하듯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단말마와도 같은 비명들이 터져 나왔다. 악! 엄마야! 어이구!

“어, 어서!”

조운과 정평구는 비차의 조종간(操縱杆)을 꽉 잡고 기체(機體)의 균형을 잡으려고 그야말로 안간힘을 다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 순간의 비차는 뿌리가 뽑힌 채 물 위에서 일렁거리는 무슨 수중식물 같았다.

“아!”

급기야 포수의 총에 맞은 새처럼 비차는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손을 써볼 도리가 없었다. 실로 무섭게 빠른 속도였다. 그러고는 끝내 커다란 느티나무 꼭대기에 연처럼 걸리는가 했더니 그대로 곤두박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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