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지 교수의 의학이야기> 있을 때 잘해라
<조유지 교수의 의학이야기> 있을 때 잘해라
  • 경남일보
  • 승인 2014.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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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병에는 흔히 초기 증상이라는 것이 있다. 건강에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했어도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병의 시초일 수 있으니 병원을 찾아가보라는 몸이 보내는 일종의 신호이다. 예를 들어 이유 없이 소화불량이 지속될 경우 위암일 수 있다든가 쉽게 더위를 타고 짜증이 많이 나는 경우에는 갑상선 기능 항진증일 수 있다든가 하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신호를 보인다고 해서 모두 다 큰 병인 것은 아니어서 불필요하게 몸 주인을 걱정시키고 안 써도 될 병원비를 쓰게 하는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신호에 민감해야 하는 것은 그것들 중 몇 몇은 실제 몸 주인의 생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을 만큼 굵직한 것들이어서 슬기롭게 알아채 대처하는 사람은 ‘천만다행으로 살았다’ 하는 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몸 장기 중 몇몇은 이러한 신호를 보내는데 둔감한 곳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폐(허파)이다. 폐는 알다시피 양쪽 쇄골에서 시작해서 명치 부위의 양쪽까지 길게 서 있는 장기로 양쪽에 하나씩 모두 두 쪽이 있다. 엄마 뱃속에서 나오는 순간 복중에서 폐 속에 차있던 양수가 빠지고 그 자리가 공기로 메워서 처음 숨을 쉴 때 아이는 비로소 응애~하고 울음을 터트린다. 사람은 폐가 활동을 개시하면서 홀로 사는 삶을 시작하는 셈이다. 이렇게 시작한 폐의 움직임은 우리가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계속 된다. 다리의 근육은 잠시 움직임을 멈춤으로 쉬게 할 수 있고, 눈은 살짝 감아 그 기능을 잠시 멈추게 할 수 있지만 폐는 그렇지 않다. 폐를 잠시 쉬게 해준다? 특별히 폐 수술을 받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것은 곧 그 사람의 생명이 다했음을 의미한다.

폐는 그 성향이 묵묵히 일만하는 순둥이 일꾼 같다. 웬만큼 약해지지 않아서는 주인에게 잘 내색을 하지 않는다. 필자는 폐를 치료하는 호흡기내과 의사인데 때때로 이런 폐의 묵묵함이 안타까울 때가 있다. 60대 중반 쯤 되는 초로의 환자 한분이 진료실로 찾아오셨다. 숨이 차시다고 했다. 정년퇴직 후에 부인과 함께 가까운 산을 찾아다니는 것이 유일한 낙이셨는데 전에 잘 가던 산이 요즘은 부쩍 힘에 부친다는 것이다. 원래 하루 한 갑 정도 담배를 피우셨고 환갑이 지난 후 아이들 등살에 줄이긴 했지만 여전히 담배 몇 개비는 그의 좋은 친구라고 하셨다. 집히는 병이 있어 몇 가지 검사를 하고 다시 뵙자고 했다. 짐작한대로 그의 폐는 이미 절반이상 기능이 없어진 상태였고 평지는 그런 대로 걸어 다닐 수 있겠지만 오르막길은 힘들 정도였다. 다시 폐를 돌아오게 할 방법은 없냐고 환자가 내게 물으셨다. 안타깝게도 나는 속 시원한 대답을 드리지 못했다. 고개를 푹 숙이시고 한숨처럼 조용히 그분이 내뱉으셨다. ‘왜 이지경이 되도록 나는 몰랐을까요?’

일찍 일을 시작한 탓일까 폐의 노화는 45세 전후로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다. 마흔 다섯을 넘으면 점차 폐의 기능은 하향곡선을 그리는데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훨씬 가속이 붙는다. 한번 잃게 된 폐기능은 치료를 하면 나아지기는 하지만 좀처럼 다시 정상이 되기 어렵다. 하지만 담배를 끊고 심폐기능을 좋아지게 하는 운동, 걷기나 자전거타기를 꾸준히 해주면 그 떨어지는 추세를 막아볼 수 있고 숨이 찬 것도 훨씬 좋아진다. 짜게 먹지 않고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충분히 먹어 비타민을 보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등산을 하거나 무거운 짐을 옮길 때 예전보다 빨리 숨이 차면 병원을 찾아 상담을 해 보는 것도 좋다. 이러한 노력도 폐기능이 그나마 남아있을 때 해야 효과가 있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 양쪽 가슴에 손을 올려보자. 본인이 느끼는 못하는 사이에는 폐는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런데 순둥이 머슴이라 힘들어도 힘들다 얘기를 하지 않는다. 버티고 버티다 나중에 지쳐 버리기 전에 한번 쯤 내 폐를 너무 내팽개쳐두고 있지 않는 지 돌아보면 어떨까.

있을 때 잘해라. 이것은 소중한 사람이나 폐, 모두에게 어김없이 일리 있는 말이다. 원래 순둥이가 화나면 더 무서운 법이다.

/경상대학교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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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대학병원 호흡기 내과 조 유지 사진
경상대학병원 칼럼_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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