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28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28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10.1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6장 1. 추락 후에 오는 것
“여보!”

조운을 부르는 둘님의 안타까운 외침이 크게 울렸다. 모두는 눈앞이 캄캄하여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저 내 몸뚱어리가 지상 어딘가를 향해 내리꽂히고 있구나! 하는 느낌 정도가 전부였다. 아니, 그것은 너무나 창졸간에 당한 일이어서 무감각에 가까운 그런 감각조차도 번개처럼 지나갔을 뿐이었다.

인간이 신의 영역을 넘본 대가는 무섭고 처참했다. 날기를 소원한다면, 사람이 아니라 새나 연으로 살아야 했다. 아무리 새의 운을 타고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연을 잘 만든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새가 될 수는, 연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끝났다. 이제 모든 게 끝났는가? 그런데 아직은 하늘이 그들 목숨을 거둘 때가 아니었을까? 그들이 저승 문턱에서 돌아설 수 있었던 것은, 비차가 처박힌 곳이 산자락 끄트머리에 길게 드러누운 평평한 들녘이라는 사실이었다. 한마디로 천행이었다.

추락한 비차에서 맨 먼저 뛰어내린 조운이 허겁지겁 뒤쪽으로 달려갔다. 그도 필경 몸 어딘가에 부상을 입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아내와 뱃속 아기의 안위에만 정신이 쏠려 있을 터였다. 곧이어 정평구도 같이 내려왔다.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마구 비틀거리고 있었지만 그 역시 큰 상처는 없는 것같이 보였다.

그러나 둘님과 상돌은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앞자리에 탄 사람들은 가벼운 찰과상과 타박상만 입은 반면, 뒤쪽에 탄 사람들은 치명적인 상처나 충격을 받은 게 확실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그렇게 높은 곳에서 급속도로 떨어졌으니 어쩌면 그대로 절명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아, 여보!”

“이보시오!”

조운은 둘님을, 정평구는 상돌을 불렀다. 조운은 보았다, 아내의 하반신이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을! 정평구도 보았다, 상돌의 한쪽 다리가 부러져 너덜거리고 있는 것을!

둘님이! 동생! 조운의 짐승 같은 울부짖음이 하늘을 찢고 땅을 흔들었다. 정평구의 어쩔 줄 몰라 하는 소리가 형편없이 망가져버린 비차에 부딪쳐 허공으로 흩어져갔다. 비차는 포수의 총을 맞아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깃털이 빠져버린 따오기나 고니처럼 보였다.

“크, 큰일 났소, 강형! 부, 부인이……!”

자기 아내가 임신을 했다가 잘못된 경험을 겪었을까. 둘님을 살펴본 정평구가 조운보다 먼저 소리쳤다. 또한 상돌을 보더니 귀신을 본 사람같이 고함을 질렀다.

“부, 불구자! 시, 신체…….”

조운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피눈물을 내쏟기 시작했다.

“으흐흐, 으흐흐흐…….”

정평구가 조운의 어깨를 마구 잡아 흔들며 다급한 목소리로,

“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오. 어, 어서 두 사람을 오, 옮겨…….”

무정한 일이었다. 둘님은 유산하고 말았고, 상돌은 평생 다리를 절며 살아야 할 신세가 되고 말았다.

회오리바람은 내가 언제 불었느냔 듯 거짓말같이 잔잔해졌고, 그제야 고개를 내민 해는 무심한 얼굴로 하늘 중천에 떠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