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30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30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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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1. 추락 후에 오는 것
천왕봉이 세상을 굽어보고 있는 지리산 쪽에서 진주로 가는 길 위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걸음걸이로 비척비척 간신히 발을 떼놓는 두 사내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주술사가 소생시킨 시체들이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서른 후반에 접어든 것 같은 사람은 조운이었고, 마흔을 좀 더 넘긴 듯한 사람은 정평구였다.

“의원의 말이, 제 아내는 앞으로 다시는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답니다. 석녀, 석녀가 돼버렸다고요! 우리 집안 후손을 영영 볼 수가 없게 된 겁니다.”

“음…….”

“대(代)가 끊어지게……. 흑…….”

조운은 광풍에 꺾인 맨드라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오열을 터뜨렸다. 정평구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위로했다.

“그래도 목숨을 건졌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오.”

조운의 입언저리에 일그러진 냉소가 번져났다.

“목숨? 그깟 목숨, 개한테나 던져줘라, 이거라요.”

맞은편에서 불어오는 흙바람이 사람 눈을 못 뜨게 했다. 마치 광녀의 머리칼이 함부로 날리는 것을 보는 듯했다. 정평구는 조운의 어깨에 얹었던 손을 맥없이 내리며,

“그러니 이제 그만…….”

조운이 이번에는 돌멩이가 탄알처럼 박힌 땅바닥에 발을 동동 구르며 울부짖었다.

“상돌이 그 동생은 한평생 불구자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내가, 내가 죽일 놈이란 말입니다!”

드문드문 떠 있는 구름도 추위를 타는 듯 잔뜩 웅크려 보였다. 정평구는 하늘이 내려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쉬며,

“차라리 내가 죽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오.”

길가에 서 있는 나무들은 대부분 몇 개 되지 않은 잎을 간신히 매달고 있었다. 조만간 완전한 나목이 될 것도 많아 보였다. 조선소나무도 푸른 빛을 잃고 뿌연 먼지를 흠뻑 뒤집어쓴 모습이었다.

“상돌 그 사람, 백정이라도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정말 나로서는 더 무어라 드릴 말씀이 없소.”

정평구의 말은 찬 대기 속으로 속절없이 흩어져갔다.

“차라리 내가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조운은 상대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소리쳤다.

“이런 게 운명이라면 너무나 가혹하고 저주스럽습니다!”

잠시 눈 둘 곳을 몰라 하다가 그들이 걸어온 뒤쪽을 돌아보는 정평구의 눈에, 백설로 뒤덮인 천왕봉의 웅장한 자태가 들어왔다.

“누가 내게 이런 운명을 주었단 말입니까?”

두 손으로 머리칼을 쥐어뜯는 조운이 정평구 마음에는 당장 어디서 나타날지도 모를 왜군보다도 더 위험해 보였다. 그랬다. 곳곳에서 왜군들이 설치고 있는 실정이었다. 낙오된 왜병이라도 맞닥뜨리게 되면 무기 하나 없는 그들은 꼼짝없이 당할 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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