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편지
가을 편지
  • 경남일보
  • 승인 2014.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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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외남 (사천 축동초등학교 교사)
사락사락 햇살을 품은 바람이 불면 황금물결로 출렁이는 논에서 햅쌀밥 냄새가 난다. 후두두둑 튀어 달아나는 메뚜기, 벼를 쪼아 먹는 참새들을 쫓느라 바쁜 허수아비도 지쳐서 쉬는 오후, 수확하느라 바쁜 농부들의 일손은 멈출 줄 모른다. 하던 일 잠시 멈추고 파란 하늘을 바라보니 문득 한 마리 새가 되어 세상구경을 하며 훠이 훠이 날아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쑥부쟁이, 벌개미취, 감국, 박하 등 야생초 향기를 맡으며 이춘수의 꽃이라는 시를 읊조려 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시구처럼 개성과 능력이 제각각인 아이들이 자기 빛깔과 향기를 찾고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꿈을 갖도록 도와주어야겠다. 아이들의 흥미와 적성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함께하는 시간과 공유거리가 많아야 한다. 그래서 틈날 때마다 소소한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 주고 맞장구도 쳐 주며 관심을 보여준다.

지난 한 주 동안 우리 반 모두에게 진심을 담은 편지를 썼다. 1번부터 끝번까지 한 명 한 명 얼굴을 떠올리며 편지를 써 내려가노라니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그 아이만의 아름다움과 특별함을 찾아낼 수 있었고, 그 보물을 편지에 담아 전했다. 아이들이 방과후 활동을 하는 동안 가방에 살짝 넣어 두었는데 이튿날 등교하자마자 “선생님, 편지 잘 받았어요”라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참 흐뭇했다. 내가 몰래 건네준 것처럼 내 책상서랍, 책갈피 등 곳곳에 숨어서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답장은 심신의 피로를 말갛게 씻어주는 상쾌한 바람이었다.

학년 초 교육과정 설명회 때 학부모들께 우리 반 아이들이 말과 글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창의적으로 표현하며 타인과 공감하고 협동하는 태도를 기르도록 애쓰겠다고 말했었다. 일기·시·편지·독후감 등 다양한 유형의 담화와 글쓰기를 통해 국어와 문학을 이해하고 자신의 말과 글에 책임의식을 가지는 주체적 국어생활을 하면서 국어를 사랑하는 마음도 생긴 것 같아 흐뭇하다. 간판에서 순우리말을 찾기 어려운 요즘, 한국인의 삶이 배어 있는 한국어를 세계어로 발전시킬 수 있게 아이들이 국어에 관심을 갖고 문학이 주는 즐거움을 경험하도록 국어교육에 힘써야겠다.

서외남 (사천 축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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