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위기의 경전 폐철도 부지
침몰위기의 경전 폐철도 부지
  • 경남일보
  • 승인 2014.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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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진 (경상대 EU연구소장 건축학과 교수)
증기기관차 철도가 세계 최초로 실용화된 것은 1825년이었다. 100년 뒤인 1925년에는 서부경남 교통의 요지였던 진주에도 경전선이 개통되어 바야흐로 철도시대를 열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의 철도는 일제 침략수단으로 건설했던 것이므로 이를 경사스러운 일로 보기에는 너무나 허탈하고 슬프기까지 한 역사를 담고 있다. 철도 건설 과정에서 그들은 우리의 토지를 강탈했고, 우리 선조들을 강제동원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렇게 개발한 철도는 우리 자원을 일본이나 전쟁터로 조달해간 약탈의 도구였다.

광복 후 그들이 남기고 간 철도는 우리의 유일한 광역교통 수단이었다. 특히 1960년대 말부터 본격화된 산업화 및 경제발전기의 기차는 시골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가기 위해 몸을 실었던 애환의 공간이기도 했다. 당시 이렇게 서울로 떠난 고모댁을 방문하기 위해 필자의 고사리 같은 손을 붙잡고 삼랑진역에서 서울로 가는 환승열차를 타시던 어머니의 긴장한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기만 하다. 군부 독재시절인 1970년대에는 기차는 급기야 젊은 학생들에게 저항과 자유, 그리고 낭만의 상징이기도 했다. 또한 이와는 반대로 진주역의 입영기차는 징집대상 젊은이들에게 공포감을 가져다 준 염라대왕 같기도 했다. 이처럼 진주역과 경전선은 우리의 애환과 삶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최근 철도 현대화에 따른 직선 및 복선 전철화 사업으로 폐부지로 남게 된 경전선 선로의 활용에 대한 논의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문제의 핵심은 이를 공익목적에 사용하고자 하는 지자체는 돈이 없고, 관리주체인 한국철도시설공단 및 한국철도공사는 무상 양도 및 임대를 꺼린다는 점에 있다. 더구나 폐선부지 무상임대는 법률적인 뒷받침이 돼 있지 않아 더욱더 난항을 겪고 있다. 이러한 때에 경전선이 지나가는 진주를 비롯한 총 8개의 지자체가 공동으로 동서통합을 위한 남도순례길 조성안을 내놓고 이를 위한 제도화 등에 대한 국회 및 관련 부처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50년간을 배고픔 해결을 위해 숨가쁘게 달려왔다. 이러다 보니 정작 놓쳐버린 것은 사람이었다. 경제논리에 밀려 안전을 무시했으며 국토공간은 사람이 아닌 교통시설 중심으로 개발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세월호 등의 연이은 안전참사를 통해 이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또한 이처럼 인간이 소외된 국토는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없는 자살공화국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난국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전통 및 인문·문화적 가치를 지키고 계승해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경전선 폐부지의 역사성과 지역성 보존 및 재발견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를 위한 남도순례길은 일제에게 약탈당했던 원혼에게는 억울함을 풀어주고, 실향민들에게는 포근한 쉼터를 만들어 주는 작업이다. 그리고 우리의 후세들에게는 새로운 세상과 창조적 미래를 열어주는 보람이 될 것이다. 이처럼 남도순례길 조성은 단순한 폐철도 재생사업이 아닌 국가 철학과 미래의 성패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다.
최만진 (경상대 EU연구소장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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