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232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232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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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2. 메아리 없는 절규
그 지옥의 현장을 먼저 발견한 사람은 정평구였다.

조운은 집이 가까워질수록 아내를 의원에게 맡기고 혼자 돌아오는 그 길이 너무도 외롭고 참담하여 계속해서 고개를 푹 숙인 채 터덜터덜 걷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자지러지는 듯한 정평구의 이런 말에 번쩍 정신이 났다.

“가, 강형! 저, 저길 보, 보시오! 오, 온 도, 동네가……?”

“예에?”

조운은 반사적으로 얼굴을 들었다. 그러고는 보았다. 불바다가 돼 있는 고향집 마을을. 그랬다. 불지옥이었다. 그곳뿐만 아니라 온통 불길에 휩싸인 고을이었다. 하늘도 붉고 땅도 붉었다. 비봉산과 가마못도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듯했다. 세상은 한 마리 거대한 붉은 새가 퍼드덕거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저, 저럴 수가……?”

“이, 이놈들을 어, 어떻게 해야……?”

방심했다. 미련했다. 그리고 맹신했다. 한 번 약탈행위를 저지르고 돌아간 왜군이 또 우리 동네에 들어와 천인공노할 짓을 자행할 것이라고는 내다보지를 못했다. 성을 함락시키지 못한 화풀이를 민가에 하리란 생각을 왜 하지 못했던가. 그건 삼척동자라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결국 이것도 운명이란 말인가, 운명.

어, 어디에……? 조운의 눈이 나란히 붙어 있는 그의 집과 아내 둘님의 친정집을 향했다. 그것은 동네 초입에 있어 금방 그의 눈에 들어왔다. 아니었다. 없었다.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그때까지도 하늘로 치솟는 시뻘건 불길과 검은 연기뿐, 그의 집과 처갓집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못했다. 누가 요술을 부린 듯, 사라져버렸다.

“어머니! 아버지!”

조운은 정신없이 부모를 부르며 집이 있던 곳으로 내달렸다.

“장인어른! 장모님!”

미친 사람같이 그들을 불러대며 달려갔다.

“아, 가, 강형! 위, 위험하오!”

정평구가 급히 조운의 뒤를 따르며 소리쳤다. 하지만 완전히 돌아버린 조운의 걸음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조운은 그야말로 바람같이 가마못 옆을 지나 단걸음에 집터가 있던 자리에 당도했다. 두 집은 그 뼈대만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다.

‘퍽!’, ‘탁, 타닥!’ ‘푸시시!’, ‘쿵!’ 아직도 불에 타면서 무언가 무너지고 갈라지고 터지는 소리들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화마는 마지막까지 포식을 하고서야 혓바닥을 집어넣을 모양이었다. 조운의 목소리도 불에 타들어가는 것같이 들렸다.

“어, 어디들 계십니까? 마, 말씀들 해보세요!”

그러나 어디에서도 사람 그림자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약탈과 방화, 강간, 살인을 자행한 왜군은 이미 돌아가 버린 게 확실했다. 왜구가 짓밟고 간 그 현장을 무슨 말로 표현하랴. 오직 한마디, 없었다.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었다. 차라리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하지만 있었다. 남은 게 있었던 것이다. 그건 바로 남자 둘, 여자 둘, 그렇게 넷이었다. 네 구의 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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