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33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33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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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2. 메아리 없는 절규
여전히 불덩이가 남아 있고 불티가 튀고 있는 잿더미 속에서 조운은 발견하고야 말았다. 총을 맞고 칼을 맞아 죽은 후에 그 몸뚱이마저 온전히 보존되어 있지 못한 처절무비한 주검들을. 세상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 소중한 생명들을.

“어머니이! 아버지이!”

“장인니임! 장모니임!”

불에 탄 사체들을 얼싸안고 끌어안고 부둥켜안고 절규하는 조운의 모습에는, 그 비극을 만들어낸 악귀마저도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강술명과 박씨, 김학노와 정씨. 이제는 어느 누구도 그들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내, 내가 주, 죽어야 하는데, 왜, 왜, 왜……?”

오로지 비차 하나에만 매달리는 아들을 한평생 근심걱정으로만 지켜보시던 부모님, 생업도 팽개친 사위를 한 번도 못마땅해 하지 않으시던 장인 장모님. 동생들 천운과 지운, 아내 둘님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정평구도 이제는 위로할 엄두조차 나지를 않는 탓에 그저 조운의 옆에서 ‘강형!’만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었다. 조운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정평구 자신마저도 대체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까마득했다. 머릿속이 모든 게 불타 없어진 자리보다도 더 텅텅 비어버린 듯했다.

결국 모든 게 저 연기 같은 것을! 검은 불기둥 모양으로 치솟다가 금방 흩어져버리는 연기를 보며 정평구는 그렇게 매달려왔던 저 비차마저도 부질없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날아서 뭣하리.

“내가 왜 살아 있어야 하는 겁니까?”

조운의 몸속에 광녀의 혼이 자리 잡고 있는 걸까. 정평구는 그 경황 중에도 전신에 소름이 훅 끼쳐들었다. 울다가 웃다가 다시 울다가 웃다가 하는 조운…….

“으흐흐흑, 푸하하하! 으흐흐흑, 푸하하하!”

그 소리는 너무나 크고 거침이 없어, 동네 저 뒤편 비차 제작장인 분지에 있는 비차의 날개와 바퀴를 흔들고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지금 성에서 왜군을 맞아 싸우고 있을 시민의 귀에도 들릴 만하였다.

‘아아, 이 한을, 슬픔을 어떻게 씻을 수 있단 말인가?’

정평구는 남아 있는 불길 속으로 몸을 날리고 싶었다. 저런 광경을 보기 위해 여기 경상도 땅까지 왔더란 말이냐? 대체 비차, 비차가 뭐기에……. 차라리 지원병이 되어 왜놈들과 싸우다가 죽을 것을!

급기야 정평구도 조운의 옆에 퍼질러 앉아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번 터진 눈물은 영원히 멈춰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조운의 울음소리, 웃음소리는 갈수록 커져갔고, 온 세상은 두 남자가 내는 소리로만 꽉 차버리는 듯했다. 비차도 주인들을 따라 몸부림을 쳐가며 울고 웃고 하리라.

-비차야, 모든 게 끝났다.

정평구 귀에는 조운의 울음과 웃음이 그런 소리로 들렸다. 바로 그런 속에서였다. 그전에 사립문이 있던 자리쯤에서 무슨 인기척이 났다. 정평구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고 그쪽을 보며 속으로 소리쳤다. ‘왜, 왜놈들이 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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