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34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34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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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2. 메아리 없는 절규
움직이려 들지 않는 비차같이 온몸이 경직되면서 순간적으로 정평구의 뇌리를 후려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물체가 보이기 전에 먼저 들려온 게 소리였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그건 뜻밖에도 염불 외는 소리였다. 이런 전쟁통에 염불소리라니? 그리고 더더욱 놀랄 이런 말이 그 뒤를 이었다.

“조운이! 그만 슬퍼하시게나.”

그러자 그 소리가 강한 힘으로 끌어당기기라도 한 듯, 부모 시신에 얼굴을 처박고 있던 조운이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바싹 마른 노승 하나가 서 있었다. 조운의 입에서 신음 같은 소리가 울음과 뒤섞여 새나왔다.

“보묵 스님…….”

“인연이 있으니 서로 얼굴을 보게 되는구먼. 나무관세음보살.”

“스님께서 이런 난리통에 어떻게……?”

조운이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보묵 스님을 보고 물었다. 보묵 스님은 정평구를 한 번 보고 나서 조운에게 말했다.

“부처님께서 불민한 불제자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게지.”

그새 불길은 상당히 줄어들어 있었고, 무엇이 타는 소리도 많이 수그러들었다. 조운은 진무 스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실컷 울고 싶었다. 그러면 뼈를 녹이고 살을 헤집는 이 슬픔, 이 고통을 벗어던질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늙고 병든 이 몸에게도 할 일을 맡기신 부처님! 비명에 가신 이분들의 원혼을 부디 달래 주시라고, 부처님께 기도드릴 것이야. 극락왕생 원왕생, 극락왕생 원왕생…….”

그때쯤 땅에서 일어서 있는 조운과 정평구를 향해 보묵 스님이 잔잔한 호수처럼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장례는 나에게 맡기게. 부처님 곁으로 잘 인도하겠네.”

정평구가 감격에 겨운 얼굴로 말했다.

“그, 그래 주, 주시겠습니까, 스님.”

보묵 스님은 손에 든 염주 알을 굴리며 말했다.

“무슨 말씀을?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것을.”

그때 기적같이 비봉산 쪽으로부터 들려온 것은 틀림없는 새소리였다. 아아, 저 소리. 왜구들이 제아무리 이 나라 강토를 짓밟고 다녀도 새의 입을 틀어막을 수는 없으리라.

“우리 조운을 잘 부탁하오.”

그러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는 보묵 스님 눈에 나타나 보였다. 연에 앉은 새. 지금은 그날의 집이 불타 없어져버렸지만, 그 초가지붕 위 하늘가에 높이 펼쳐져 있던 그 신비롭고 환상적이던 장면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조운의 두 눈에서는 끊임없이 진한 눈물만 줄줄 흘러내렸다. 그리고 남강과 가마못 물보다도 더 많을 그 눈물 속에서 조운은 보았다. 그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며 하늘로 멀어져가고 있는 네 분 어른들을.

-안녕, 안녕히…….

고인들은 마치 비차를 타고 공중을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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