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젊은 엄마에게
어느 젊은 엄마에게
  • 경남일보
  • 승인 2014.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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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야 (시인, 수필가)
젊은 엄마 하나가 아이를 학원에 보내려고 하는데 무슨 학원에 보내면 좋겠느냐고 물어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는 이제 겨우 만 네 살로 놀이방을 떼고 올 봄에 유치원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벌써 전부터 방문 학습지 교육을 시켜왔는데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했거나 혹은 불안했던 모양으로 또 다른 학원을 보내기로 결정하고는 다만 미술 학원이냐 피아노 학원이냐 하는 식으로 분야의 선택만 남겨두고서 물어왔던 것이다.

아이고, 아서요. 솔직히 그런 말이 나오려 했지만 입 밖에 내진 못했다. 설혹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들을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한 세대 전 나 역시 아이를 기르며 비슷한 경험을 했었기에 그 젊은 엄마의 그 심정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떻든 병폐라 말하면서도 조기교육, 사교육이니 하는 것들이 벌어지는 현상을 지켜보는 셈인데, 아이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면 고생길로 들어선다고 하더니 그 말이 실감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예전부터 입시지옥란 말을 들어왔고 나 역시 아이를 기르면서 부모 입장에서의 경험을 했기에 지금의 어린 아이들이 자라는 내내 치러야 할 고생을 생각하면 그저 아득해지는 기분이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어릴 때는 실컷 놀렸고 학교에 다니면서도 그렇게 심하게 공부에 치이게 하지는 않았다. 수험생이 되면 그제야 코피 터지도록 공부에 매달렸고 온 가족이 숨죽일 듯 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그 일들을 떠올리면 진저리가 쳐질 정도가 아닌가.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학습지, 피아노, 미술, 태권도, 영어, 수학에 각종 입시학원 등 이루 헤아릴 수도 없다. 사교육 망국론이 나온 것도 옛일이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그럼에도 아이의 부모 입장에서는 다른 아이들은 여기저기 학원에 다니는데 내 아이만 안 보내면 뒤쳐지고 낙오자가 되는 게 아닌가 불안해서 견디지 못하고, 남들 보다 앞서라고 오히려 더 보낸다. 이러한 실정임에도 정부의 교육정책은 신뢰를 주지 못하고,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한다.

그러한 까닭에 오늘도 제대로 놀지도 자지도 못하는 아이의 등에 학원 가방을 매서 몰아세우는 우리의 젊은 부모들. 남들보다 한 발이라도 앞서 가야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오늘의 우리 사회.

젊은 아이 엄마가 자신의 어린 아이를 어느 학원에 보내면 좋겠다고 물어왔을 때 선뜻 ‘아이고 아서요’라고 말하지 못했다는 건 생각할수록 슬픈 일이 아니던가?

“아이들은 놀면서 배우고, 저희들끼리 어울려 놀다보면 어떤 문제에 부딪쳐도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내게 된답니다. 아무 염려 마시고 답안을 아이의 머릿속에 억지로 우겨넣어주려 하지 마세요.” 그렇게 스스럼없이 말해줄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으려나.

전미야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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