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기역사 물망국치
명기역사 물망국치
  • 경남일보
  • 승인 2014.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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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준 (진주동명고등학교 교감)
그저께 10월 26일은 35년 전인 1979년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했고, 105년 전인 1909년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격폐(擊斃)한 날이다. 어제 주요 일간지를 샅샅이 찾아봐도 박 대통령 35주기 추도식 기사는 빠짐없었으나 안 의사에 대한 기사는 전혀 없었다. 다만 바디프랜드란 안마의자 제조회사에서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일 105주년을 기념해 추모광고를 게재했다.

올해 1월 19일에 개관한 하얼빈 역사 안의 안중근기념관은 200㎡의 규모로 안 의사의 사진과 유묵, 의거 관련 사료들이 전시돼 있다. 의거 현장 바로 앞에 있던 귀빈용 대합실을 개조해 건립했기에 기념관 내부에서 통유리창 너머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사건의 발생지’란 문구가 새겨진 의거 현장을 볼 수 있다. ‘격폐(擊斃)’란 ‘쏴 죽이다’라는 의미로 참으로 적절한 어휘이며, 또한 기념관 정면 외벽에 걸려 있는 시계는 안 의사 의거 시각인 9시 30분에 멈춰 있는데, 중국인들의 역사 명기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교과서에서 배운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람으로만 알고 있지만, 그는 고고한 선비이자 탁월한 의병장이었고 투철한 평화주의자였다. 그의 유묵은 대부분 국보로 지정되었고, ‘격폐’ 이후에 뤼순감옥으로 압송된 뒤 ‘동양평화론’을 썼는데, 미완인 ‘동양평화론’의 핵심은 ‘동양의 중심지인 뤼순을 영세중립지대로 정하고, 한·중·일 세 나라가 참여하는 상설위원회를 설치해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고, 3개국이 일정한 재정을 출자한 공동은행 설립과 공동 화폐를 발행해 어려운 나라를 서로 돕고, 3국의 젊은이로 공동군대를 편성하고 상대의 언어를 가르칠 것 등과 로마 교황청도 이곳에 대표를 파견해 국제적 승인과 영향력을 갖게 하자’는 내용이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의 관점에서 봐도 탁월한 견해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중국의 사적지에 가면 어김없이 ‘명기역사 물망국치(銘記歷史 勿忘國恥)’란 간판이 서 있다. ‘역사를 마음에 새겨 나라의 치욕을 잊지 말자’는 이 구절은 너무나 당연한 역사교육의 명제이지만, 지금의 우리에겐 ‘명기’도 ‘물망’도 없이 오직 진영 논리에만 집착해 역사의 본질과 교훈적 의미를 내팽개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은 안 의사 의거 105주년의 단상이다.

문형준 (진주동명고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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