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서 9세기 축조 추정 토성 발견
고성서 9세기 축조 추정 토성 발견
  • 김철수
  • 승인 2014.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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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에 긴급발굴조사 요청
고성군에서 9세기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토성이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고성군은 최근 고성읍 서외리 49번지 일원을 발굴 조사하는 과정에서 판축 토성을 발견, 문화재청에 긴급 발굴조사 지원을 요청했다고 28일 밝혔다.

판축 토성은 사방에 나무기둥을 세우고 나무판을 댄 뒤 흙을 차곡차곡 다져 만든 성이다.

남아있는 토성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하고 거리 10m, 높이 2m, 폭 5m∼6m 규모다.

토성의 북쪽과 남쪽에는 성벽을 둘러 판 물이 없는 못인 외황(外隍)과 내황(內隍)이 있는 구조다. 토성의 내벽 아랫쪽에서는 돌로 기초를 쌓은 기단석렬(基壇石列)과 고려시대 보수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보이는 석벽이 확인됐다. 기단석렬은 9세기 전반의 토성 축조기법이다.

고성군은 이런 정황을 토대로 이 토성이 고성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성이라고 추정했다.

성곽 주변에서는 삼국시대와 통일 신라시대 토기편, 고려시대 자기편, 삼국시대∼고려시대 기와도 대량 발견됐다.

글씨가 새겨진 명문 기와도 출토됐다. 고성군은 ‘이품(二品)ㅇㅇ’, ‘보승(保勝)’, ‘양호상ㅇ(養戶上ㅇ)’ 등의 명문은 현재까지 국내에서 처음 확인되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 토성은 828년 고성군 태수로 부임한 김양(金陽)이 축성한 것으로 고성군은 추정했다.

김양은 태종무열왕의 9대손인데 고성태수로 부임, 고성읍 수남리 죽도(竹島)에 낙열정(樂悅停)이라는 정자를 짓고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토성은 고려시대 고성의 군사와 행정 중심성곽으로 활발하게 사용되다가 조선시대 세종 30년인 1448년에 고성읍성이 축조되면서 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군 관계자는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그동안 베일에 쌓여있던 소가야 이후의 고성의 역사를 밝히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조신규 고성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소가야 이후의 고성의 역사를 밝히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철수기자 chul@gnnews.co.kr



사진설명:고성읍 서외리 일원의 문화유적 발굴조사 과정에서 고성에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토성(土城)이 발견됐다.
고성 명문기와
고성 명문기와
고성 문화재 조사구역 전경
고성 문화재 조사구역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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