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38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38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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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3. 기녀(妓女)를 추천하다
“아, 장군께서……!”

홍여는 사내같이 해 있는 자신의 볼품없는 몰골을 시민에게 들킨 것이 몹시 부끄러운 듯 얼굴 가득 홍조를 띠었다. 그 모습이 시민의 눈에 그렇게 곱고 아름다워 보일 수 없었다.

“내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어지지 않는구나. 지금 네가 하는 이 모든 행동들이 말이니라.”

시민은 숨이 가빠왔다. 왜적 수천을 맞아도 이처럼 호흡하기가 힘들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날 밤 시민 자신에게 눈물로 연정을 털어놓던 여린 꽃같이 나약하고 애처로워 보이던 그녀가, 세상 어떤 남정네보다도 사내답고 당찬 여장부가 되어 성민들을 이끌고 있다니. 홍여는 두 사람인가. 시민은 하늘도 놀랄 그녀의 변신 앞에 그저 허둥대기만 하다가,

“그만 일손을 멈추고 나를 따르라.”

“예에?”

홍여가 귀를 의심하는 듯 시민을 쳐다보았다. 시민이 한 번 더 명했다.

“본관을 따라오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시민은 먼저 몸을 돌려세웠다. 허리에 찬 칼 그림자도 따라 움직였다. 그런데 시민이 한참을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당연히 따라와야 할 홍여가 보이지 않았다. 그를 쫓아온 제갈 부관이 아주 난색을 띤 얼굴로 고했다.

“지금 성민들이 홍여를 잡고서 놓아주지 않고 있습니다.”

성을 포위하고 있는 수많은 왜구를 보면서도 바위같이 미동조차 하지 않는 시민의 몸이 기우뚱하는 게 제갈 부관 눈에 또렷이 비쳐들었다. 시민은 귀신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뭐라? 성민들이 홍여를……?”

그러면서 성가퀴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시민은 보았다. 늙은이와 여자,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홍여를 빙 에워싸고 있는 것을. 사람들 울타리에 싸인 채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빛으로 이쪽을 보고 있는 홍여의 유난히 작은 얼굴이 천리 밖인 양 멀어 보였다. 시민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내가 참으로 못난 인간인 것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무지렁이들보다도 형편없는 자라는 것을 왜 몰랐던고?”

제갈 부관이 민망하고 난처해진 얼굴로 물었다.

“당장 가서 관기 홍여를 끌고 오리이까? 그리고 홍여를 붙들고 있는 성민들을 감옥에 가두오리까?”

시민이 손과 고개를 한꺼번에 내저으며 말했다.

“아, 아니다. 그대로 두어라. 내가 많은 것을 배웠느니라.”

“감히 장군의 명을 거역하고 있는 것들이 아닙니까?”

하지만 비록 말은 그렇게 해도 제갈 부관 또한 여간 감동을 받은 표정이 아니었다. 촉석루로 향하는 두 사람 그림자가 칼이나 창처럼 보였다. 어디선가 수성 군사들 훈련 받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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