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41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41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11.0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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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 1. 알 수 없는 사내
홍여는 여린 잎새가 바람에 쏠리듯 몸을 돌려세웠다.

막사 중앙에 위치한 나무탁자 위에 놓인 등잔 불꽃이 성벽 위에 꽂아놓은 깃발처럼 펄럭거렸다. 시민의 심경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은 그 순간이었다. 천막에 일렁이는 홍여의 그림자가 마치 유령처럼 비쳤던 것이다.

‘아, 대관절 이게 웬 망조란 말인가?’

시민의 마음 한 귀퉁이가 푸슬푸슬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관기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앞장서서 성민들을 격려하면서, 섬나라 오랑캐들을 쳐부술 무기를 마련하던 홍여에게서 내가 무엇을 보고 있더란 말이냐?’

안다. 그도 안다. 어쩌면 여러 날 성을 지키고 있는 병사와 민간인 모두가 순국의 길로 들어서게 되리란 것을. 군사 수로나 주 무기의 위력으로나 군량미의 비축 상태로나 그 어떤 것을 놓고 비교해 보더라도 공성군에 비해 수성군은 절대적으로 약세라는 것을. 그렇지만 수성장인 시민 자신이 먼저 그런 나약하고 불길한 예감에 빠져서는 결코 아니 되었다.

“자, 잠깐 거, 거기 섰거라!”

시민의 입에서 그런 다급한 소리가 튀어 나왔다. 막사를 막 빠져 나가려던 홍여가 멈칫, 그 자리에 섰다.

“안 된다. 죽어 귀신이 되어서는 안 돼. 유령이라니……?”

시민은 홍여로선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그런 소리를 연방 되뇌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심한 열병을 앓는 사람 같기도 했다.

“처녀귀신은 아니 될 말, 나라를 위하는 꽃다운 몸이…….”

홍여 보기에 귀신, 유령은 시민이었다. 중얼중얼 내뱉는 그의 혼잣말은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 내는 소리같이 느껴졌다. 홍여는 홀연 지독한 무섬증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조총 같은 신식무기로 무장한 왜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였다. 그러나 시민의 죽음. 홀로 마음에 두고 있는 정인(情人)의 죽음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고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리는 것 같았다.

장군! 홍여는 다시 돌아서서 시민을 불렀다. 그런 그녀 몸속에는 그녀 혼이 아닌 다른 혼이 들어가 있는 듯했다.

“장군! 장군은 절대 돌아가시면 아니 되옵니다. 모두가 죽더라도 장군만은 끝까지 살아 남으셔야 하옵니다.”

시민이 일그러진 웃음과 함께 피를 토하듯 말했다.

“나만은 살아야 한다고? 흐, 나 혼자만 말이지, 나 혼자만…….”

바람은 좀 더 잔잔해진 것 같은데 등잔불이 크게 깜빡거렸다. 자칫 꺼질 뻔하다가 가까스로 되살아나는 생명이었다. 홍여가 이런 말과 함께 의자에 앉아 있는 시민의 품을 향해 달려든 것은 그때였다.

“장군을 죽음의 사자에게 빼앗길 수는 없사옵니다. 차라리 이몸을 죽음의 사자에게 대신 던져서라도 장군을 구할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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