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42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42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11.0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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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 1. 알 수 없는 사내
시민의 입에서 신열에 부대끼는 사람이 내는 신음과도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건 장대(將臺)에 올라서서 군사를 지휘할 때 나오는 그의 남아다운 음성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이 잘난 것도 없는 사람을 구하겠다고 애쓰는 사람이 또 있었구나! 남에게 피해를 줄 바에는 내가 먼저 세상을 떠버려야 할 것을!”

시민의 눈앞에 조운의 모습이 나타나더니 사라질 줄 몰랐다. 그가 하나뿐인 자신의 일생을 걸고 만든다는 비차라는 것도 얼핏 보이는 듯했다. 홍여가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앉아 있는 시민의 품을 보채는 아이처럼 파고들었다. 두 사람 몸무게를 감당하기가 힘겨웠던지, 아니면 저도 가슴이 찡해왔는지 멀쩡한 의자 다리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홍여야. 그대로 듣거라. 전쟁터의 시간은 매 순간 순간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느냐?”

홍여는 시민이 자기를 떨쳐버릴 사람같이 느껴졌는지,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사옵니다. 장군님에 관한 일 말고는…….”

“지금 당장 왜적이 자랑 삼는 조총의 탄환이 저 천막을 꿰뚫고 날아들 수도 있느니.”

홍여가 몸부림치며 시민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말했다.

“설혹 이 순간이 왜놈들 총알에 맞아 마지막이 된다고 할지라도 여한이 없사옵니다. 아니지요. 오히려 장군과 함께하는 이 순간이 마지막이길 간절히 바라고 싶사옵니다. 그렇게 되면 장군과 저는 영원히,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 테니까요.”

“허, 그래? 네 진정 그렇단 말이지?”

마침내 시민의 떨구어져 있던 손이 홍여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따스했다.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그렇다.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아이였다. 더군다나 전투가 시작되면 제 몸을 돌보지 않고 앞으로 나설 홍여라는 사실을 잘 안다. 적의 표적이 될 공산이 너무도 컸다. 정말 지금 이 순간이 그녀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마지막이.

‘기생이 되기에는 참으로 아까운 아이로구나.’

시민은 처음으로 홍여를 안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오늘밤에도 이 아이를 이대로 보낸다면 천추의 한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시민을 사로잡았다. 홍여의 시신을 끌어안고 통곡하는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여 시민은 몸서리를 쳤다.

막사의 불이 꺼졌다. 달과 별도 그곳을 피해 다른 곳으로만 빛살을 내렸다. 전쟁은 일시적이나마 끝났다. 총통류가 내뿜는 불길이 아닌 또 다른 종류의 원초적인 불꽃으로 활활 타오르는 밤.

천막은 하늘의 이부자리 같았다. 전쟁 없는 전쟁터의 시간은 꽃밭으로 세상을 수놓았다. 그러나 날이 밝아오면 그밤에 있었던 모든 일들은 허무하게 사라진 무지개처럼 흔적도 남아 있지 못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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