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의 역학이야기>고급차
<이준의 역학이야기>고급차
  • 경남일보
  • 승인 2014.11.0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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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님, 사는 게 별 겝니까. 폼생폼사 아입니꺼.” 후배가 간단명료 상쾌하게 말했다. 그는 줄곧 외제차만 고집하며 타고 다닌다. 하지만 정작 생업은 대부분 국산차인 중고차 매매업이다. 국산차의 허접함과 외제차의 우수성을 낱낱이 비교하며 장황하게 예찬하는 모습이 좋은 수레에 감탄하는 영락없이 ‘말꾼’ 모습이다.

물론 고급차를 선호하는 저마다 이유가 있겠으나 한 편으론 외형적 형식적 과시적 허세심리도 도사려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심리는 햇살이 지나치게 해맑은 기후 탓으로도 볼 수 있다. 우리는 보통 의·식·주라고 말한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은 식·의·주의 순서로 중시한다. 잦은 정변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중국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 다른 사람 눈에 띄는 옷과 주택은 일부러 허름하게 한다. 그러나 실속은 엄청나다. 오랜 역사의 경험적 소산이다.

우리는 옷을 먼저 친다. 옷이 날개이고,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고 시각적인 것에 우리 마음이 먼저 간다. 선명한 날씨 탓에 눈에 보이는 외형적 형식적인 것에 아주 익숙하다. 그래서 그런지 외국 여행을 나가보면 조금 깔끔한 옷차림에 얼굴이 다소 반질거린다 싶으면 거의 틀림없이 우리나라 사람이다. 우리는 사시사철이 뚜렷하고 왕조 또한 500년 가까이 되는 안정적 풍토이기에 햇살이 투명하고 햇빛에 드러나는 형형색색의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다. 딱 보면 척 안다.

하여 우리들은 구름 끼고 안개 자욱한 흐린 기후 풍토에서 발달된 구체적이고 자세한 설명이나 기록을 따분해 한다. 앞뒤좌우를 분간할 수 없는 바다와 사막 한 가운데서 반드시 필요했던 기하학적 도형계산이나 추론 같은 것을 아주 짜증스러워 한다. 물론 경주불국사나 석굴암축성 등 정밀해야 할 때는 고도의 정밀한 계산을 치밀하게 하기는 한다. 그러나 대개 일상에서는 계산보다 눈대중으로 대충 처리하고 그리고 별 탈 없이 산다. 이 모든 것이 아름답고 찬란한 기후 덕이다. 이런 투명한 가을 날씨에는 더욱 그러하다. 하여 말하지 말고 보고 느끼라. 딱 보면 척 알기에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물론 지레짐작의 주관적 오류의 확률도 있지만, 이런 날씨 때문에 우리는 감각·직감·직관적인 엄청난 눈치문화를 갖게 되었다.

반면 우리는 관념에서 약하다.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은 관념적이다. 사색적이다. 하지만 춘향전의 사랑은 업고 놀자 감각적이다. 맵고 짠 자극적 음식, 커피의 짙은 향, 삐까뻔쩍한 외제차에 뿅 끌린다.

이런 좋은 차를 탐하고 선호하는 기운을 금여록(金與祿)이라 한다. 금여란 금으로 만든 수레라는 뜻으로 옛날 임금님이 타던 어가(御駕)나 귀족과 고급관리가 타던 수레이다. 금여는 일간을 기준으로 지지에서 그 여부를 판단한다. 즉 갑-진, 을-사, 병·무-미, 정·기-신, 경-술, 신-해, 임-축, 계-인이다. 금여 기운이 일지나 시지에 있을 때 더욱 강하다. 하지만 보는 바와 같이 지지가 패지가 아니라 역마방과 고장지이다. 주인의 명령에 따라 달렸다가 멈췄다가 하는 영락없이 ‘말꾼’ 신세이다. 자기가 모시는 사람의 신분지체에 따라 뻐기는 허세 정도가 달라진다. 하여 고급차를 선호하는 것은 전생의 화려하였던 말꾼의 습벽을 잊지 못해서이지 않을까.

어떻든 금여의 기운이 있는 사람은 좋은 차를 탈만큼 소득과 지위가 따른다. 비록 허세라고 할지라도 기어코 비싸고 좋은 차를 타고 싶어 하고 또 갖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금여는 부귀공명의 길성(吉星)이다.

만약 좋은 차를 타는 만큼 다른 이들을 깊게 배려하고 또 넉넉하게 베푸는 선행을 이어간다면 금여의 기운을 가진 주인공의 복록은 이 현세에서 더욱 차고 넘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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