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새로운 슬기와 사랑을
이별은 새로운 슬기와 사랑을
  • 경남일보
  • 승인 2014.11.09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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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인간은 태어나 서로 만나게 되고 또한 언젠가는 반드시 이별하게 된다. 온갖 사물이 그러하듯 사랑스러운 어린 시절이 있는가 하면 완숙한 성년기를 지나 시들고 병들어, 마침내 그 일생에 종말을 고하지 않을 수 없는 깊고 무거운 시절도 있다. 물론 그것이 정해진 우주의 이치라고는 하나, 이별은 언제나 슬프고 아프겠지만, 더욱 넉넉한 사랑을 위해서 헤어질 수밖에는 없는 건지. 아름다운 이별에 사랑이 동반되지 않을 수 없을 듯, 사랑에 대한 사람의 소망은 인생을 얼마나 향기롭게 해주는가.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이건 간에 늘 이별이 염려 되며 이별의 불안을 떨칠 수 없는 건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늘 이별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이별을 생각하고 산다면 가까운 사람에게도 낯선 이들에게도 너그러워지고, 측은해지고, 가엾게 생각되고, 좀 더 진실해질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좀 더 따뜻이 사랑할 수도 있으리라.

왠지 모르게 예감되는 이별, 그 기막힌 슬픔의 시간이 언제 어느 때 닥쳐올까 두렵고 안타깝고 초조함. 기막힌 사랑에는 언제나 이런 불길한 예감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닐 수 있다. 그래서 그 불길한 예감을 이겨 내기 위하여, 그것을 부인하고 부정하고 싶어서 마침내 사랑은 절정에 이르러 마지막이 가까웠음을 예고하게 되는 건 아닐까. 이별을 예감하는 초목들도 그 푸른 잎새를 붉게 불태우고, 푸른 열매를 붉게 붉게 농익혀 가듯이, 어쩌면 사랑도 이별이 예감될 때 더욱 불타오르는지도 모른다.

이별에 이르게 되면 고운 모습으로 정직한 모습으로 서게 되며, 그 정직과 진실이 있기 때문에 이별의 아름다움을 어찌 부정할 수 있으랴. 붉으나 붉은 단풍을 보면 이별이 예감되듯, 가을에는 서리치는 가을에는 핏빛 단풍 같은 불타는 참회 처절한 웃음을 가져오며 이별의 예감을 떨칠 수 없는 것인지. 가을도 저 나름의 특색을 가졌을 뿐인데, 가을에 사람들은 왜 자기들의 의식 속에 또 하나의 불을 밝히게 되는 걸까.

사랑은 눈물을 창조하는 과정이라면, 이별은 새로운 슬기와 다시 사랑할 기회와 용기를 주는 건 아닐까. 인간사 모든 일에 심각한 결과를 가져왔을지라도 그 시작은 결국 만남에서부터 비롯되는 것. 사랑을 영원히 추억하게 되는 건 아름답고 지순한 이별이 되지만, 사랑의 절정은 언제나 이별이 아닌가. 어느 서리치는 가을날 가랑잎 쌓인 길 위에 발걸음 놓아 가며 다시 못 볼 이름을 불러보며, 우리는 언젠가 이별로 가슴을 적실 것이다. 가을비에 젖어 든 핏빛 단풍처럼 흥건히 가슴을 적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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